최근 국내 증시에 투자한 어느 개인투자자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 저조한 투자 수익률에 대해 푸념 섞인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증시가 급락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증시에도 크리스마스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산타 랠리’라는 단어다.
산타 랠리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의 대표 키워드 중 하나인 산타클로스의 이름에서 유래됐으며 이어지는 1월에도 강세장이 이어져 1월 효과로 불리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기업들의 보너스 지급이나 배당권리 확정, 기업 실적 발표에 대한 기대감이 극대화되며, 연말 소비 증가 및 펀드 리밸런싱 등 심리적, 계절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주가가 지속적인 상승 경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증시는 S&P500, 나스닥, 다우 등 주요 지수가 올해 최고치를 경신하며 ‘산타 랠리’를 이어갔다.
전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피벗(pivot·통화정책전환)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에 같은 기간 국내 증시에도 훈풍이 불며 약 3개월 만에 코스피 지수는 2600선을 돌파했다.
이후 정부가 올해 2월 국내 증시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를 예고하자 국내 증시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당시 관련 내용이 권고 수준에만 그쳐 보완이 필요하다 등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나, 추후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한 유인책 마련과 세부 사항 개선을 통해 국내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증시 부양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연말에는 ‘산타 랠리’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으나, 3일 밤 느닷없이 터진 비상계엄 사태로 국내 증시는 설상가상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거래일 동안 코스피 시가총액 중 약 113조원이 증발했으며,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6~10일 약 2조2300억원에 달하는 순매도를 기록하는 등 연말 산타 랠리에 대한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아울러 대외신인도, 소비 심리 등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에 끼친 부정적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의 손해는 천문학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심지어는 일부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증시가 이미 소외받고 있는 ‘외톨이 증시’ 현상에 더해 불안한 정국의 영향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켜 ‘양털 깎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털 깎기는 쑹훙빙의 ‘화폐전쟁’에 나오는 음모론적 용어로, 한 나라의 증시 등의 금융시장이 폭락했을 때 저렴한 가격으로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연초 대비 약 9.5% 하락했으며, 코스닥은 약 23% 하락을 기록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와 나스닥이 같은 기간 각각 13%, 30%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며, 심지어는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도 수익률이 낮은 상황이다.
아울러 코스피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지난달 11일 기준 0.83배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이전에는 없던 이례적인 기록이다. PBR이 1보다 낮으면 주가가 청산 가치를 밑돈다는 의미로, 같은 기간 주요국인 미국(4.64), 유럽(1.9), 일본(1.37), 중국(1.17) 등과 비교해봐도 현저히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올해 국내 증시에 산타 랠리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 의견이 모이고 있으나, 향후 시장 안정성이 점차 확보됨에 따라 반등 가능성이 있는 종목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적 대비 과도하게 저평가된 종목과 낙폭이 과대한 업종 등은 생각보다 반등 타이밍이 빠르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증권 업계에서는 최근 급격하게 올라버린 환율을 변수로 지목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율이 올라버리면 환차손이 발생해 주식 거래를 통한 수익률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어, 국내 증시가 전혀 매력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장률 전망 수정과 위축된 경제 심리 등의 요인도 산타 랠리 기대감을 꺾이게 만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물가상황 운영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성장률) 애초 1.9%로 예상했는데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이 -0.06%p 가량 긴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요한 경제법안이 여·야 합의로 빠르게 통과해 경제와 정책이 분리돼 움직인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더 이상 국내 증시가 물러날 곳은 없다. 양털 깎기와 같은 기형적인 현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고착화되기 이전에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은 빠르게 해소하고 국내 증시를 반등시킬 수 있는 사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오는 2025년 연말에는 국내 증시에도 산타 랠리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