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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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 결정에 불만인 군중이 법원을 난입하는, 있어선 안될 사태가 빚어졌다. 가장 신뢰도가 높아야 할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정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 민심이 무섭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심판 중인 헌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10명 중 4명을 넘는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코리아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회사가 최근 공동 조사한 결과를 보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2%, ‘신뢰하지 않는다’는 43%다.
‘신뢰하지 않는다’를 이념 성향별로 보면 보수층은 70%, 진보층은 26%다. 연령별 불신 비율은 20대가 53%, 30대는 54%였다.
반면 40대는 반대 24%, 50대 40%로 거꾸로 나타난다.
사법부가 자초(自招)한 불신
이번 계엄과 관련한 윤 대통령 탄핵 사건 이전에는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낮지 않았다.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어느 기관이나 조직에 비해 낮지 않았다. 그러던 상황이 최근 크게 바뀐 것은 어디에선가 많은 문제 들이 초래됐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우선 법원부터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관한 여러 건의 재판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연되고 있음은 모든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조국은 재판이 지연되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고 나서야 의원직이 박탈되고 감옥에 들어간다.
윤미향 전의원 같은 경우 늑장 재판으로 말미암아 국회의원 4년 모두 채우고 난 뒤 의원직 상실형이 나왔다.
그동안 자격 없는 의원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 주고 온갖 특혜를 준 셈이다.
그러니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비아냥이 나와도 법원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헌재는 어떤가. 가장 공정하고, 가장 존경받고, 가장 신뢰받아야 할 헌재의 신뢰도가 최근 우려할 정도로 위협받는 지경이다.
거대 야당에 의한 행정부 인사 탄핵 소추 심판이 하릴없이 늦춰지면서 초래된 장기간 행정 공백도 일정 부분 헌재가 공조(共助)한 셈이다.
헌재 구성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도 헌재 구성원들은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가.
임명되자마자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됐던 이진숙 방통위원장 건만 봐도 많은 국민들은 헌재를 과거와 같은 시선으로 신뢰하기가 어렵게 됐다.
‘심판관 개인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그들
‘법과 양심에 따라 한치 흔들림 없이 심판한다’ ‘심판관 개인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그들이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건 결과는 진보 보수 양대 성향의 심판관별로 정확히 4대4로 판결이 나왔다. 국민들에게 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윤 대통령 탄핵 건은 탄핵 인용 여부보다 심판 시기에 관심이 더 쏠려있다.
헌재 결론이 내려져 윤대통령이 파면되는 경우, 곧 이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이 선거에서 이재명이 출마할 수 있느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느냐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초미의 관심사다.
벚꽃 대선(4월)이냐, 장미 꽃 대선(5월)이냐를 놓고 사활은 건 싸움을 벌이는 여 야 싸움에 중요한 열쇠를 헌재가 쥐고 있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빠른 시일 내에 인용, 조기 선거가 실시된다면 이재명의 출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그간 질질 끌어오던 법원의 이재명 재판까지 늦춰진다면 야당으로선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사활을 건 절체절명의 싸움 소용돌이에 헌재가 휩쓸려 있다.
그래서 한덕수 총리 탄핵 건 같은 것을 먼저 하고 윤 대통령 건은 신중하게 하자는 게 여당이고, 그 반대 주장이 야당이다.
마은혁 헌재 심판관 후보 임명 문제는 그래서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 헌재 구조는 보수 진보 4대4다. 마 후보자가 들어가 헌재가 9인 체제가 될 경우 진보 우세가 된다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윤 탄핵 조기 결정, 조기 대선, 이재명 대통령 공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법원의 자성(自省)도 절실하다
법원은 과연 공정한가. 헌재는 흔들림 없는 중립인가. 양대 기관은 국민 앞에 떳떳한가.
정치 편향은 없는가, 엄정 중립인가, 추상같은가. 이 질문에 티끌만큼의 부끄러움 없다고 자신있게 선언하고 심판에 임해야 한다.
이미 국민들은 법원과 헌재를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후 법원 일각에서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 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찻잔 속의 태풍인가.
최근의 헌재 행보와 관련, 심지어 헌재의 구성 방법과 존재 여부에 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의 엄정함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성역이어야 한다. 그 성역이 허물어져 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法治)를 수호하는 사법부가 존중받으려면 가장 먼저 그들 스스로의 위상 정립이 중요하다. 자성과 다짐이 필요할 때다.
국민들도 정치 성향으로 갈려 사법부를 매도하거나 비판만 해선 안된다. 과격한 선동으로 헌재나 법원을 비난 공격하는 일은 있어선 안된다.
지금 절실한 것은 최대 관심사인 이재명 재판, 윤석열 탄핵 소추와 관련하여 온 국민이 납득할 명판결을 내리는 일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후폭풍은 불을 보듯 뻔하다. 훗날 역사가 그들의 심판을 심판할 것이다.
윤석열이 살아나거나 말거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거나 말거나는 핵심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것인지가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