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가자지구 인수 구상에 반발,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아랍권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임시 휴전 협정이 타결돼 일부 인질 교환이 이뤄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재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기간 관리·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가자지구에 살던 200여만 명의 주민들을 인근 요르단과 이집트 등지로 영구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프랑스 칸에서 이탈리아 라스페치아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의 리비에라(’해안선’이란 뜻)와 같은 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가자지구를 사실상 영구 점령하겠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미국의 중동 개입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이 구상을 최근 며칠 간 측근 2명과 논의했을 뿐이다. 네타냐후 이스라 총리도 공동 기자회견 직전에야 트럼프에게서 이 같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중해 연안의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두 곳에 살고 있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40km가량 길게 뻗어있는 가자지구는 이집트 영토였으나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통치 아래 있다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 간의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이양됐다. 그러나 이슬람 수니파인 하마스가 2006년 이 지구를 다스리던 파타당과의 내전에서 승리, 지금까지 하마스가 통치해 왔다.
 
이 지구는 이스라엘에 봉쇄된 중동의 대표적인 화약고이자 분쟁 지역이다. 인구가 약 230만 명에 달하는데도 변변한 공항 하나 없고 국경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열리며, 영해도 이스라엘에 의해 제한되는 등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지역 내지는 '세계 최대의 감옥'으로 여겨진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다스리고 있어, 팔레스타인은 사실상 두 나라나 마찬가지다.
 
가자지구는 서울 60% 정도의 크기로 3차 중동전쟁 전까지만 해도 정정이 괜찮았다. 그래서 각종 카지노와 호텔이 들어선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주요 관광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과의 크고 작은 교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등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관광산업이 서서히 위축됐다. 지금은 1년이 훨씬 넘도록 지속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인해 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다. UNDP(유엔개발계획)는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데 3000억~4500억 달러(434조~651조 원)가 소요되고 10~15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고급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것은 이러한 휴양지 배경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자 이스라엘에서는 환영 광고물이 설치되는 등 극우세력들을 중심으로 이를 환호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가자지구 주민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자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충격과 분노를 쏟아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가는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득일 등 서방국들도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는 자신이 이주 대상으로 지목했던 요르단과 이집트가 가자 주민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원조를 중단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협약은 전쟁 중 민간인의 강제 이주를 국제법 위반으로 본다. 따라서 가자지구 개발 계획이 국제법과 상충, 현실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냥 무시할 순 없는 상황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트럼프 안이 현상 유지보다도 더 나쁘냐”고 반문하면서 “중동 국가들이 그동안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 제안한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평화유지군을 투입하는 것도 거부했고, 이집트는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의 난민인 가자 여성과 아이들조차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요르단도 처음에는 트럼프의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 제안에 난색을 표명했으나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회담을 가진 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암에 걸리거나 매우 아픈 아이 2000명을 최대한 빨리 요르단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트럼프의 ‘가자 구상’이 현실화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가자지구에서는 오직 죽음만이 반복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총격이나 폭격을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역을 찾는다면 이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미치광이’ 취급을 받고 있는 트럼프의 구상이 비록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동지역을 확실히 뒤흔들어 놓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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