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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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위기관리 주도할 리더십 절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무역 상대국에 예외 없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자동차 관세 도입 시기를 4월 2일쯤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뒤에는 “한 달 내 발표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관세율은 25%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국내 세수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도입한 부가가치세까지 비관세 장벽에 의한 불공정 무역으로 지목, 이에 맞설 상호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다른 나라로 수출할 때는 부가세를 환급하므로 사실상 수출 보조금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거래 품목의 대부분이 무관세이므로 미국 상호 관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에 25% 안팎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피해만 따져도 연간 10조원에 이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보조금과 부가세, 외환시장 개입 등 범위가 모호한 비관세 장벽까지 상호 관세로 계산해 부과한다는 게 미국의 방침이다. 미국산 농산물 수입 규제와 기업 금융지원, 인터넷 망 사용료 부과 등 미국이 문제를 제기한 분야까지 상호 관세 대상으로 할 경우 그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발 관세 전쟁은 한·미 양국의 쌍무적인 통상 차원의 품목 및 세율 협상에 그치지 않고 경제 분야를 비롯한 대내외 정책 전반에 걸친 교섭과 조율을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외교와 통상뿐 아니라 국방과 재정, 금융, 공정거래 등 사실상 국정 전반에 걸친 조율과 이를 추진할 위기관리 사령탑이 절실한 여건이다. 탄핵소추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구속된 마당에 경제 난국을 풀어갈 적임자로 한 총리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과거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실무국장과 경제 부총리를 지낸 통상전문가로 주미 대사와 무역협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현직 총리가 아니라 은퇴한 신분이라면 협상 전권을 주고 영입해야 마땅한 인물인데 야당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가 정지돼 2선으로 물러나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회가 추천한 헌재 재판관 후보자 3인(정계선 조한창 마은혁) 임명을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직무 정지됐다.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이지만 국회는 총리직에 해당하는 의원 과반수 151석을 기준으로 적용해 192명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국민의힘은 한 총리가 권한대행 신분이므로 대통령에 준하는 탄핵 정족수 200석을 적용해야 한다며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제출했다. 헌재는 한 총리 탄핵심판 심리와 권한쟁의심판 등에 대해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 54일 만인 19일 처음으로 변론을 진행했다. 첫 기일에 증거채택과 조사, 진술 등 모든 절차를 1시간 30분 만에 마치고 변론 종결을 선언했다.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절차를 왜 두 달 가까이 미뤘는지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임기 시작에 맞춰 전격적으로 관세 전쟁에 나섰다. 한 총리는 그동안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심판을 신속히 진행해달라는 의견서를 네 차례 제출했다.
협상 골든 타임 놓치지 말아야
헌재가 그동안 한 총리 탄핵 심판을 지연한 배경을 두고 아쉬움과 추측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 탄핵 절차를 몹시 서두르는 것과 비교하면 헌정질서의 안정이라는 명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헌재가 한 총리 심판을 지연함으로써 국가와 국민 생활을 안정시킨다는 취지를 오히려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 총리 탄핵 심리가 대통령에 비하면 덜 중요하다는 상대적 인식에 머물 것이 아니라 빨리 결단을 내려 국정을 안정시키고 대외 협상력을 강화해야 했다. 경제 식견이 뛰어난 최상목 권한대행이 대통령과 경제 부총리, 총리직을 몰아 수행하고 있으나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전체적인 조율에는 한계가 있다. 경제가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 해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선물을 가득 안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갖고 친밀감을 과시하는 협상력을 발휘했다. 아직 성과를 속단하기는 어렵다 해도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나간 빠른 행보다. 나라가 어려울 때 헌재가 속히 국정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한 총리 선고를 마무리 짓기 바란다. 그래야 헌재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시각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통상 위기에 대처할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