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SF 영화의 고전을 꼽으라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2025년 현재 이 영화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주 탐사의 묘사가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최고의 SF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1968년에 개봉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7년 전 영화가 외계 문명과의 접촉 가능성을 다루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갈등, 거대 우주 탐사, 초광속 이동 등을 다뤘다는 점은 현재 존재하는 우주 SF 영화의 효시격인 작품으로 불러도 무리가 없다.
 
이처럼 큐브릭의 영화는 시대를 앞서가며 후대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역시 그 중 하나다.
 
1964년에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무기의 사용 권한을 가진 한 사람의 음모론적인 망상에서 비롯된 선제공격이 상호확증파괴의 양상을 띠며 결국 전 세계를 핵전쟁의 파멸로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잭 리퍼 미 공군 장군은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거짓 정보를 퍼트리고 소련에 핵 공격을 감행하는 ‘R 작전’을 시행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미 정부는 공격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하지만 공격 중단 암호는 리퍼 장군만이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을 찾으러 오는 자국 군대에게 공격까지 감행한다.
 
이에 미 정부는 확전을 막기 위해 소련 측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지만 알게 된 사실이라고는 공격이 감행될 경우 소련의 ‘운명의 날’ 무기가 자동으로 작동돼 전 세계를 핵과 방사능에 뒤덮이게 할 위험에 놓였다는 점뿐이었다.
 
영화는 이 같은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의 위험성을 블랙코미디 장르로 다루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해당 영화의 개봉이 80년도 더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시 꺼내보게끔 만드는 데는 현재의 국가 간 경제적 대립이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 양상과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취임과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한 무분별한 관세 전쟁을 예고하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방식은 영화 속 내용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리퍼 장군이 존재하지 않는 소련의 공격을 꾸며낸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까지도 미국 경제의 적으로 규정하는 듯한 발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며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아주 많은 방식으로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우방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대부분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대미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은 0.79%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같이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 혹은 과장된 정보를 기반으로 여러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며, 관세라는 경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해당 방식이 상대 국가와의 연이은 보복관세를 야기하며 전 세계를 경제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캐나다에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자 캐나다는 미국으로 보내는 전기에 대해 25% 추가 요금 부과 등이 포함된 보복조치에 나섰으며 이에 미국 정부는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50% 상향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다행히 양국이 한 발 물러난 모양새를 취하며 캐나다를 향한 50% 관세까지 시행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관세를 두고 미국과 글로벌 국가들 간 긴장 상태는 여전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 경제 보호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미국 경제를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밀어 넣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경제가 연결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외국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은 자국 내 비용 상승도 함께 발생해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의 발표에 따르면 2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98.3(1985년=100)으로 전월 대비 7포인트 떨어졌으며 이는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다우존스 전망치(102.3)보다 크게 밑돌았다.
 
또한 미국 S&P500 지수가 11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전월 19일 고점 대비 9.3% 하락하며 증시가 하락 국면에 접어드는 모습을 기록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자 11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피터 두시 폭스 뉴스 기자가 캐롤린 리빗 백악관 대변인에게 “백악관에서 다우지수에 숏(하락 포지션)인 사람이 없냐고 확신할 수 있냐”고 묻는 진풍경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나라는 호황세를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며 경기침체 우려를 애써 부정하는가 하면 미 증시 하락에 대해서도 “시장은 좋았다 나빴다 하겠지만 우리는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고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소련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인 핵 공격이 발생하기 직전, 리퍼 장군의 공격 중지 암호를 알아내 폭격기들을 회항시키는데 성공한다.
 
모두가 인류 멸망을 막았다는 사실 앞에서 기뻐하던 찰나, 소련의 방어 공격을 받은 한 대의 폭격기가 무선 통신이 끊긴 채 여전히 핵공격을 향해 비행 중인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미국과 소련은 하나의 폭격기를 멈춰 세우는 데 실패하고 ‘운명의 날’ 무기가 작동되며 세계는 핵폭탄으로 뒤덮인다.
 
이처럼 상호간의 확증파괴 전략은 한 번 시작된 이상 의지만으로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마주하게 되며 그 임계점까지 넘어설 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지금의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전략 역시 되돌릴 수 있을 때 돌려야지만 관련 피해를 최소화하고 복구가 가능할 것이다.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면 크나큰 오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80년 전 큐브릭의 영화가 던지는 경고를 지금 다시 돌이켜 봐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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