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확장 노린 ‘우클릭’ 신뢰 부족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불안한 정국 속에 차기 대통령 선호도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행보가 현란하다. 방탄조끼를 받쳐 입고 지난 19일 광화문에서 열린 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에 참석,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몸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렸다. 다음날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삼성이 어려움을 지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길 기대한다”며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는 완강한 투사와 기업 친화적인 부드러운 지도자의 이미지가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는 올들어 흑묘백묘론까지 꺼내 들고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우클릭’ 행보를 보였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 등에서 여러 차례 말바꾸기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지만 그의 정치적 비중으로 보아 제1야당 노선에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나온 민주당 정책 과제는 그가 제시한 ‘선 성장 후 분배’ 기조와는 정반대 노선이었다. ‘우클릭’ 하겠다더니 ‘좌클릭’으로 U턴했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왔다.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등 이른바 진보를 표방한 정권에서 비슷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에서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상대적 빈곤을 완화하겠다는 경제 자유화와 사회보장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아섰다는 비난을 샀다. 구조조정의 와중에 노동 시장 유연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해고 조건을 완화하고 파견 노동제를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보장 확대라는 당초 목표와는 달리 복지와 의료 사각지대가 늘어 한계를 보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농민과 노동계 반발을 샀다. 정부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의지에 비해 냉혹한 대외여건에 따른 현실적인 제약이 따랐다.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복지 정책이 정부에 과도한 부담을 안겼고 진보-보수의 지나친 이념대립이 그나마 정부 역량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 그 배경을 말해준다.
 
이 대표의 노선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따르게 마련이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지금 거론되는 여야 대선주자들 지지도를 모두 합해도 이 대표에게 쏠리는 선호도에 훨씬 못미친다. 그런데도 중도층 유권자들의 지지가 부진해 외연 확장에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워 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중도층 지지를 겨냥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경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포기하고 반도체특별법 쟁점인 ‘주 52시간 예외 허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시사했다. 이 대표가 핵심 기구로 내세운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혀 기본사회구상을 포기하는 게 아닌가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3월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이 대표가 공동의장으로 이끄는 민주당 민생경제연석회의는 20대 민생 의제와 이를 위한 60개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비롯한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며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평일이 아닌 공휴일로 제한하는 등 이 대표의 최근 행보와 거꾸로 가는 과제를 공개했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을 확대해 주택임대를 10년으로 보장하는 방안까지 의제로 포함됐다. 이 대표가 서둘러 나서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진화했지만 시장 경제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당내 흐름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한때 위원장 사퇴를 시사했던 기본사회위원회도 이 대표가 맡기로 했다. 국가가 기본소득과 주택 금융 등 분배와 복지를 책임지고 주도하겠다는 ‘좌클릭’ 위원회를 다시 간판으로 내건 셈이다. 민주당은 노조 쟁의를 자극할 우려가 높은 ‘노란봉투법’도 다시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불안 키우는 요인 돌아보아야
 
이 대표가 ‘우클릭’ 발언 이후 좌파 단체나 당내 강경파의 반발을 의식해 방향을 튼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는 “사람이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봤다고 해서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다”며 “시각이 한쪽으로 쏠려 흑백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정치인이 좌우를 두루 살펴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일은 당연한 과제다. 이를 두고 말바꾸기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좌우를 살피는 일과 정책이 그때그때 바뀌는 것은 사뭇 다르다. 정국이 험악하게 돌아가는 시기에 차기 대선을 노리는 인물이 좌우 상충하는 정책을 제시하게 되면 혼란은 더욱 커질 따름이다. 더구나 정책 변화가 대외 여건 등 불가피한 요인에 의한 게 아니라 지지층 결집 등 정략에 따른 흔들림이라면 안정을 기대하기 난망이다.
 
이 대표의 ‘우클릭’이 중도층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라면 좌회전하는 순간 그 효과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반면 좌우 급변에 따른 불안이 높아져 전체 지지 기반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 국민 불안이 어디서 나오고 무엇이 ‘이재명 포비아’를 키우는 원인인지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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