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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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풍 부를 한 대행 재탄핵, 고발 위협
선수가 초선이지 정치·경제적 배경이나 경륜에 있어서는 능히 지도자급 반열에 오른 인물들인데 의정 활동에서는 아직 행동대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6월 조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한 충성 경쟁에 몰두한 탓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 대행 재탄핵이 역풍을 불러 중도와 보수층의 재결집을 불러오거나 당사자를 대선 유력 후보로 키워주는 결과를 경계하면서 치밀한 계산 중에 추이를 지켜보는 듯하다. 초선들은 권한대행의 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싸잡아 탄핵해야 한다고 기세를 올렸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법제사법위원회는 통상 현안 논의를 위해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최 부총리에 대해 탄핵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를 향해 “구치소로 가게 할 것”이라고 몰아세우는 발언까지 나왔다.
지금 민생은 비상계엄과 윤상열 대통령 파면에다 탄핵에 탄핵을 거듭한 혼란으로 자영업을 비롯한 중소상공인들이 파산하고 건설업 부도가 속출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게다가 미국발 무차별 관세 공습으로 수출이 격감하면서 외환과 증시 등 금융시장까지 예측을 넘어서는 충격을 받고 있다. 야당의 탄핵으로 한동안 2선에 물러나 있던 한 대행은 헌재 결정으로 복귀해 어렵게 국정의 중심을 회복하는 단계에 있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이뤄져 대미 통상협상에 정상간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편 관세와 품목 관세, 상호 관세를 교대로 들먹이며 교역 상대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알래스카LNG(액화천연가스)사업과 자동차·반도체 등 미국 내 공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75개 대상국에게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며 중국에 대해서는 보복 관세를 대폭 올렸다. 한 대행에게 대미무역 흑자와 투자 확대,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까지 포함한 ‘원스톱 쇼핑’을 거론했다. 대미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협상을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이 가능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누가 권한을 남용하는지 돌아봐야
그러나 정치권은 거국적인 성원으로 힘을 모으기는커녕 조기 대선을 겨냥한 발목잡기와 정략에 여념이 없다. 한 대행 출마설까지 불거지자 민주당은 빨리 결단을 내리라며 재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선거를 끌어갈 권한대행이 선수로 나서려면 심판 자리에서 서둘러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선 흥행을 위해 한 대행이 나서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국민의힘은 경선 이후 단일화 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눈치다.
한 대행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미국 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의 시간에 돌입했다”며 “저에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가 50여년 공직에서 걸어온 행적을 보면 ‘마지막 소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자명해 보인다. 그래도 정치권은 그 말을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해 공방을 거듭할 뿐이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마은혁 헌재 재판관 임명을 지연 처리하고 대통령 고유 권한인 헌재 재판관 지명을 단행했다는 이유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은 헌재가 한 대행의 재판관 2인 지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자 “(지명이)국민과 역사에 대한 반역이자 모욕”이라고 맹비난했다.
과연 누가 직권을 남용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한 대행의 헌재 재판관 후보자 임명이 가능한 것인지 해석에 대해서는 학계와 법조계에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고발로 갈 사항은 아니다. 안 나서겠다는 대행을 선거에 끌어들이려고 의원 서명에 나선 국민의힘이나 대미협상을 주도할 사령탑을 억지로 끌어내리려고 줄탄핵과 고발을 들먹이는 행태가 모두 개탄스럽다. 싸워도 혼란이 다소 진정된 다음으로 넘겼으면 좋으련만 모든 일정이 대선에만 맞춰져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듯하다. 명색이 지도자라는 정치인들에 대해 호감보다 비호감 평가가 치솟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