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승리 경제산업부 기자
▲ 서승리 경제산업부 기자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올해 1분기 및 향후 성장 흐름 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2월 전망치 0.2%를 하회할 것으로 추정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다음 달 수정 경제 전망 발표를 앞두고 성장률 중간 집계를 미리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 결과에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한은뿐만 아니라 많은 해외 기관들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올해 초 전망했던 수준보다 하향 조정하고 있다.
 
JP모건은 지난 8일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0.7%로 기존 대비 0.2%포인트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일주일 전에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 내려 0.9%로 제시한 지 일주일 만에 또 한 번 낮춘 것이다.
 
이처럼 국내 경제의 역성장이라는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는 상황임에도 한은은 기준금리 동결을 선택했다.
 
통상적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손쉬운 방법 중 하나로 통화정책이 거론되지만, 현재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상황만 살펴봐도 최근 높은 변동성을 나타낸 원·달러 환율과 가계부채 폭증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편적 시각으로 금리 인하를 선택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 행정부의 예측하기 어려운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또 다른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한은도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이창용 총재는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후 성장 경로를 예측하는데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두 개의 엔진 중 하나인 통화정책의 결정이 이뤄진 상황에서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최근 정부가 편성한 12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진 것이다.
 
해당 예산안은 ‘재해·재난 대응’, ‘통상·인공지능(AI)’, ‘민생 안정’ 3가지 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AI 산업 경쟁이 심화되는 흐름에서 해당 분야 육성에 나선 것은 중·장기적 성장을 위해서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올해 1월 자영업자 수가 2023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국민들도 내수 부진을 실감하고 있는 만큼, 추경 편성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을 위한 지원책에도 투입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어렵게 마련한 추경인 만큼 정치권의 협력을 통한 신속한 처리와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정밀하고 전략적인 재정 운용일 것이다. 추경 예산이 단기 처방에 그치지 않고, 민생 안정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면밀한 관리가 요구된다.
 
특히,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식 예산 증액이나 선심성 지출과 같은 근시안적 접근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의 역성장 우려는 단지 외부 요인,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2000년대 이후 지체된 구조개혁의 누적된 결과물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단기 처방에 그치는 추경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과 구조 개편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전환이 절실하다.
 
추경의 일회성 효과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재정 투입이 민간의 혁신과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첨단 기술 산업,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등 미래 산업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인재 양성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는 사회에서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는 게임의 규칙이며, 제도가 진화하지 않으면 경제도 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도나 구조적인 개혁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현재 국내 경제 상황에 접목해 볼 필요가 있는 메시지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제도의 전환과 구조개혁이 불가피한 구조적 전환의 시점이다.
 
고령화, 생산성 저하, 산업 경쟁력 약화 등 누적된 문제는 단기 처방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과감한 개혁과 장기적 안목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설계할 때다. 추경은 그 전환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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