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매도, 국정 마비에 경제계 비명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역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들은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대외협상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여러 차례다. 김영삼 정부에서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UR) 다자간 협상에 나섰던 허신행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은 쌀시장 개방에 따른 농민단체 반발로 매국노 이름을 받았다. 농민단체는 그를 대한제국 말기 친일파 이완용에 빗대어 ‘허완용’으로 부르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농업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에서 허 장관이 다자간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우대 조치를 끌어내 국내 농업의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10년 뒤 노무현 정부 때 순천대 총장에서 발탁된 허상만 농림부 장관도 쌀 관세화로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 물량을 늘렸다는 이유로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그때도 농민단체는 그를 “쌀 팔아먹은 허완용”이라 몰아세웠다.
 
이완용에 비유한 매도가 지나치기는 해도 제조업을 비롯한 수출산업에 비해 대외 경쟁력이 한참 떨어지는 국내 농업의 형편을 생각하면 농민단체 반발은 일면 이해할 만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등 잘 나가는 다른 산업의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농업을 희생시킨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했다. 그래도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농업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미국’을 다시 만들겠다며 관세전쟁을 시작하면서 충격파가 수출시장에 엄습했다. 우리 경제는 경기 부진 와중에 계엄 사태가 겹쳐 내수가 이미 얼어붙은 처지에 미국발 충격으로 수출이 급격하게 위축되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2% 역성장을 보였다. 지표상으로 보면 미국발 공세의 파도가 본격적으로 미치기도 전에 고꾸라진 모습이다. 당연히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충격을 줄일 방안을 모색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할 시기다.
 
그러나 국회에 정작 등장한 구호는 ‘매국협상 중단’ 피켓이었다. 지난 달 22일 대미 협상을 위해 출국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향해서도 같은 피켓이 펼쳐졌다. 진보당을 비롯한 야 4당은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매국협상 결사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를 벌였다. 최 부총리는 1일 국회 본회의에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상정하자 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대내외 경제 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 사퇴하게 된 점을 국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내란 가담, 미국국채 투자 등으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소추 사유를 들었다. 이재명 전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확정하고 이미 정권을 잡은 듯 기세를 올리는 민주당은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매국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교섭중단 요구하는 저의 의심스러워
 
소비와 투자, 수출이 모두 위기로 치닫는 시기에 야당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대미통상 협상을 그만두라고 촉구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이참에 관세를 크게 올려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생산공장을 미국으로 유치해 무역 불균형을 돌려 놓고 방위비 협상까지 다시 하겠다는 속셈이다. 미국산 소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을 늘리라는 요구도 포함돼 있다. 이런 판국에 대미 협상을 중단하라는 억지는 자해 행위에 가깝다. 차기 정부가 대미 협상을 결정하도록 여유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충분히 고려해 추진 중인 사항이므로 7월 타결 일정이 잠정 제시됐다.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대선 전 한국과 통상 협상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논의가 없었다고 부인하고 협상은 이어가되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침체가 깊어지면서 대로변 상가까지 불 꺼진 점포가 늘고 있다. 워낙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비대면 거래의 영향으로 동네 식당이나 소규모 점포까지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자영업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한계에 직면했다는 비명이 터진다. 이런 판국에 협상 중단으로 수출시장이 급감하기에 이르면 경제는 견디기 어려운 수렁에 빠지게 된다. 국제기구와 투자은행들은 관세전쟁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미칠 때 한국의 성장률이 0.5~1%포인트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위축으로 수출 대기업부터 지출을 줄이기 시작하면 협력 업체와 중소 거래기업으로 여파가 퍼져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직면하게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최 부총리 사퇴로 국정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미 곳곳에서 상권이 무너지는 비명이 터지고 있다. 아직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투쟁에 집착해 민생을 외면하고 매국 타령이나 늘어놓는 수준의 야당이라면 정권을 잡을 자격이 없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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