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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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게임이 주는 파급력은 크지만, 일각에서는 플레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중독 상태인 경우 질병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공식 분류하면서, 게임을 질병으로 바라볼 지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7년이 지난 현재도 국내에서는 이를 한국표준질병분류(KCD)에 도입할지 여부를 두고 주무부처에서부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해당 논란 이후 여러 차례 게임을 문화 콘텐츠이자 성장 산업으로 보며,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도입 시 관련 산업 위축과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게임 과몰입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지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며 의료·복지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상반된 입장을 보여왔다.
국내 전문가들도 도입 여부를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열린 공청회에서 “게임이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을수록, 문제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신 건강 지원 체계를 잘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는 “약이나 알코올 등 물질 중독은 특정 화학물질에 의한 신경학적 변화가 나타나지만, 게임 중독은 물질 중독과 달리 신경학적 변화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이러한 상황 속 질병 코드 도입 여부를 놓고 찬반을 나누는 것이 아닌 게임이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단순하게 찬성과 반대를 나누는 것이 아닌 게임이 가진 순기능과 그에 따른 사회적 효과를 면밀히 살펴 봐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질병 코드 도입시 단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등의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주선 변호사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게임이용장애 도입, 왜 반대하는가’ 정책토론회에서 “질병 코드가 도입되면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낙인 효과와 불필요한 약물 처방, 과도한 개입 정당화 등이 따를 수 있다”며 “병역, 취업, 해외 입국 등 실생활 전반에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게임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오락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외로움과 불안을 잠시 잊게 해주는 피난처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오프라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소통을 배우는 사례는 지난 10여년간 여러 학술지나 상담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성신 상담사는 과거 한 게임사 토론회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한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상담사인 제가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며 접근했다”며 “그 결과,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고, 게임 내에서 목표를 잃었을 때 그 상황을 현실에 대입해 문제를 인식하면서 새로운 진로 목표를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국내에서 질병 코드 도입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는 사이 게임은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의료 현장에서는 치료 과정 속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며, 디지털 치료제(DTx)로서 주목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미국 Akili Interactive Labs사는 2020년 미국 FDA로부터 아동 ADHD 치료용 디지털 게임인 ‘EndeavorRx’를 처방용 디지털 게임 치료제로 첫 승인 받았고, 국내 스타트업 ‘이모티브’가 개발한 게임형 ADHD 치료제는 ‘CES 2023’에서 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3년부터 국내에서도 디지털 치료제가 등장했으며, 2024년 10월 기준 4종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또한 게임이 약물치료로 한계를 보였던 중추신경계질환 분야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보고서가 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게임 질병 코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분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게임은 한국의 수출 60%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 산업이자, ‘K-콘텐츠 글로벌 4대 강국 도약전략’에 포함된 핵심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해외에서도 게임을 규제해야 될 대상이 아닌 치료제나 교육의 도구로 활용하고,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또한 게임 질병 코드 도입 시 1970년대에 벌어진 만화 탄압 사건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시 만화를 보면 불량 학생으로 취급되고 만화 작가가 고발되거나 만화 출판사 수십곳이 폐업했지만, 50년이 지난 현재 만화는 K콘텐츠를 이끄는 선봉장 같은 역할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더이상 만화를 본다고 불량학생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 역시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게임 질병 코드 도입을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무엇을 병이라 정의할 것인가’라는 것이 곧 ‘무엇을 정상이라 보는가’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에 직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삶의 한 형태를 불편한 시선으로 고립시키게 만드는 것일지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