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언과 반시장 법안 충돌 없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밑도 끝도 없는 폭로·비방으로 치달았던 선거에서 이재명 정부가 탄생하면서 민생 안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극심한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대로 떨어졌다. 미국발 관세 전쟁의 영향으로 지난 5월 수출마저 전년 대비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내수는 경기 순환에 따라 내리막길에 접어든 게 아니라 자영업 부진과 건설경기 침체, 막대한 가계부채가 짓눌러 회생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구조적인 요인을 안고 있다. 게다가 수출까지 크게 꺾여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 경제위기를 타개할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취임 첫날부터 직접 주재했다. 그는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즉각적인 경기 진작 효과에 대해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30조원대의 추경을 주장하면서 재정지출을 통한 경제 회생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호텔 경제학’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하자 이 당선자는 “나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정책”이라고 스스로 자랑했다. 돈을 투입하면 돈이 돌고 돌아 훨씬 큰 수요를 창출한다는 승수 효과를 강조한 것인데 실제 사례 분석을 보면 지역화폐 투입을 통한 효과가 기대만큼 이르지는 못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로 인해 재난지원금 14조원을 풀었으나 실제로 소비에 쓰인 돈은 30% 정도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사용기한을 한정해 지역화폐를 지원한다 해도 대부분 이를 가계 지출에 충당하고 다른 소득을 저축 등에 돌려 효과가 미미했다는 분석이다. 재정을 소비 진작을 위한 일회성 지원금으로 지출하기보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도로·항만·공항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나 산업구조조정에 투입해 선순환을 노려야 한다는 게 시장경제의 논리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운동을 통해 출생부터 노후까지 생애 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해 주거 의료 돌봄 교육 공공 서비스 등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기본사회’ 구상을 공약했다. 지난 21대 대선에서 모든 청년에게 연 200만원씩, 그 외 전 국민에게 연 100만원씩 조건 없이 정기적인 소득으로 지급하겠다던 ‘기본소득’ 대신 제시한 내용이다. 공약 대상을 ‘사회’로 넓혀 확장했으나 금액이나 수치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없이 방향성만 제시했다. 아동 수당은 만 8세 미만에서 만 18세 미만으로 늘리고 농어촌 주민수당을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확대하겠다고 확인했다. 이와 함께 주 4.5일제 등 노동정책도 기본사회 틀에 포함했다.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보편 지원은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을 공유해 농어촌 소득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자칫 발전단가를 높여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부담을 기업과 가계에 떠넘길 우려가 크다.
 
양도세 상속세 등 세제개편 서둘러야
 
새 정부는 이념 대신 실용과 성장을 천명했으나 그동안 민주당의 입법 추진 사례를 보면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법안이 적지 않다.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 수매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나 노조 면책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란봉투법안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대통령이 시장주의 정부를 선언한 이후에도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 거부권으로 되돌아온 법안들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총론은 시장경제지만 각론은 따로 간다는 무책임한 정책으로 들린다. 민주당이 아직 이념의 틀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시장경제를 앞세운 이 대통령의 취임은 경제난에 짓눌린 민심에 한 가닥 위안으로 다가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구호에 그쳐 정부와 여당이 시장에 역행하는 제도를 다시 추진하고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세금과 상속세 등 시장이 기대하는 세제개편이 늦어질 경우 어렵게 살아난 기대가 실망으로 돌변할 수 있다. 새 정부의 성패가 기본 정책에 달렸다는 엄중한 여건을 직시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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