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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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에서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인 1만1500원을 제시했지만, 수정안을 통해 1만1460원, 1만1360원, 1만1260원까지 줄였다.
반면, 최저임금 동결(1만30원)을 주장했던 경영계는 1만60원, 1만90원, 1만110원까지 상향 조정을 이어왔다.
최저임금이 근로자의 임금과 수당 등의 기준을 정하는 만큼 중요도는 높지만, 매번 논의 과정에서 노사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점은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 31일까지 최임위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며 이에 따라 4월부터 전원회의가 열리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22일 최임위 제1차 전원회의가 막을 올렸으며 노동계는 특수고용직(특고)·플랫폼 종사자 등 도급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확대를, 경영계는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주장했다.
이후 2차 회의부터는 각자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신경전이 펼쳐졌다.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도급근로자의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주장했으며, 업종별 차등적용은 ‘차별’이라며 경영계의 의견에 반대했다.
특히 노동계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기간 배달·택배 기사들을 만나 ‘최소보수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점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반면, 경영계는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을 초과하는 등 높은 수준에 달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음식점·숙박업 등 일부 업종에 최저임금보다 적게 줄 수 있는 구분 적용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동계가 주장하는 도급근로자의 최저임금 확대보다 근로장려금을 비롯한 다른 제도를 통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노사는 몇 차례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도급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확대와 업종별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올해도 각자의 입장만 확인한 채 내년으로 논의가 미뤄지게 됐다.
이처럼 논의가 끝나게 되면 최임위는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심의를 시작한다.
결국 노사의 올해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은 법정 심의기한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제시됐으며 법정 심의기한을 넘긴 현재까지 계속 최저임금 수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다만, 법정 심의기한 준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1988년 이후 법정 심의기한을 지킨 사례는 단 9차례뿐이다.
아울러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노사는 자신들의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노동계는 지난해 발생한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내수 경기 침체를 반영한 결과 1만1500원을 최초요구안으로 제시했으며, ‘저임금 노동자 생활안정’과 ‘노동자 생계비’가 반영되는 최저임금의 기준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영계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의 임금 지불능력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높이면 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이라며 최저임금 동결을 고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며, 이에 따라 최임위는 행정절차 등을 고려해 적어도 7월 중순까지 논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5년 연속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 구간’ 제시와 표결로 최저임금이 정해진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똑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38번에 걸친 최저임금 논의 중 표결 없이 노·사·공 합의로 결정된 횟수는 7번에 불과하며, 지난 2009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심의 때마다 반복되는 노사의 대립과 합의 없이 표결로 처리되는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최임위 전·현직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를 발족하고 6개월간 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했다.
연구회는 효율성을 고려해 최임위 규모를 15인으로 축소하는 방안과 주요 쟁점에 대한 전문위원회 논의 등을 개선안으로 제안했으나 올해는 반영되지 못했다.
올해 최임위도 예년과 같이 마지막까지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표결로 처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한민국의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이 충분한 논의 없이 시간에 쫓겨 표결로 정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최저임금을 인상하냐 동결하냐’의 문제가 아닌 노사가 주장하는 사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년에도 똑같이 서로의 주장만 반복하다 법정 심의기한을 넘기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최저임금 수정안만 제출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