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최근 인공지능(AI)이 아이디어의 발명자로 특허를 출원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연이어 나오며 화제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인간만을 특허권자로 인정하는 것과 괘를 같이하는 것이다.

다만, AI가 기존의 학습된 지식의 재조합을 넘어서 인간만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예술적인 창작이나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화학 분야에서의 변혁을 꼽을 수 있다.

화학은 분자의 구조를 다루는 학문이고 그 구조를 결정하는 결정학은 근대 화학 및 생물학 발전의 출발점이었다. 주로 분자의 단결정을 크게 성장시킨 후 X-ray를 조사하여 얻어지는 회절 패턴을 분석하여 3차원 구조를 분석하게 되는데, DNA의 이중나선 구조도 이 방법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단백질을 비롯한 분자량이 큰 분자들은 특정한 구조 없이 비정형 혹은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고, X-ray 회절 분석이 가능할 만큼 큰 크기의 결정을 만들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포항에 수천억 원을 투입하여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한 주요 목적 중 하나도 가속기에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X-ray선을 이용해 미세 결정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결정성장 없이도 3차원 구조분석이 가능한 동결 전자현미경이 개발되어 단백질 구조분석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이 기술의 태동에 기여한 3명의 연구자들이 201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조생물학 발전의 흐름을 뒤엎는 파괴자가 나타났다. 바로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프로그램 ‘알파폴드’이다. 알파폴드는 알파고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구조생물학 분야에 축적된 데이터들을 학습한 결과로 만들어진 AI 시스템으로 수년간 학습과 업그레이드를 지속하여 알파폴드3까지 출시되었다.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은 더욱 빠르고 정확해졌고, 특정 단백질이 우리 몸 안에서 생체분자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도 예측할 수도 있게되었다. 그리고 2024년 노벨 화학상이 알파폴드의 개발자들에게 주어졌다.
 
알파폴드의 등장 이후 전통적인 결정학 혹은 분광학 기반의 구조분석 방법에 의존하던 관련 연구자들은 충격을 넘어선 공포 수준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AI 기술을 이용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3차원 단백질 구조를 쉽게 디자인하거나, 특정 병원체에 결합하는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에 AI를 도입함으로써 소요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사례가 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아직 과학의 영역을 확장한다기보다는 연구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정확한 분석과 예측을 통해 연구개발을 돕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AI의 활용이 기존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과정 중 ‘아이디어’ 혹은 ‘가설’을 제안하는 ‘창의성’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혹은 두려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있어 ‘창의력’이 어떤 능력을 지칭하는지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벨상’만큼 좋은 본보기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그래핀’이란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탄소로만 이루어진 흑연의 한 층에 해당하는 그래핀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강철보다 튼튼한 구조를 가질 뿐 아니라, 투명하고 유연하면서도 전기전도도가 구리보다 좋고 실리콘에서보다 수십 배 이상 빠른 전자로 인해 이론적으로 100배 이상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이에 반도체, 전자제품의 성능을 제한하는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열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을 뿐 아니라, 100년 이상 된 코일 방식의 히터 기술을 대체할 고효율 발열체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렇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그래핀을 누가 처음 어떻게 발견한 것인가에 대한 스토리는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해답의 일면을 제시한다.
 
러시아 출신 영국 과학자인 안드레 가임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교수로 재직시 연구원들에게 ‘Friday Experiment’라고 불리는 특별한 시간을 갖도록 했다. 매주 금요일에는 기존에 진행해오던 연구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엉뚱하면서도 재미있고 기발한 실험을 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실험 시간을 통해 도마뱀의 발바닥의 미세 돌기를 모방한 초강력 접착제를 개발하기도 했고, 초전도자석 위에서 살아있는 개구리를 공중 부양시켜 2000년에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금요일 실험’이 이어지던 2004년 어느 날 그의 학생이었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흑연으로부터 그래핀 한 층을 분리해 냄으로써 수십 년이 넘게 베일에 싸여있던 그래핀을 세상에 등장시키게 되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간단한 방법이었기에 파급이 더욱 컸다.

가임 교수 연구팀은 1년 후 그래핀에서 움직이는 전자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되어 유효질량이 0이 되는 ‘Massless Dirac Ferimion’ 현상을 세계 최초로 측정하여 Nature에 보고하였다. 당시 컬럼비아대학교 김필립 교수(현재 하버드대 물리학과)도 거의 동시에 이 현상을 발견하여 Nature지에 가임 교수의 논문과 나란히 출판하면서 노벨상 후보군에 오르게 되었다.
 
2010년 5월 노벨위원회 주관으로 가임과 노보셀로프, 김필립 교수를 포함한 주요 노벨상 후보들과 그래핀 연구자들,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여 ‘노벨 심포지엄’을 열었다. 필자는 당시 그래핀을 화학적으로 크게 합성하여 실제 전자기기에 응용하는 방법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5개월 후 가임과 노보셀로프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 노벨위원회의 보도자료를 보니 필자가 발표한 미래 그래핀의 응용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인용되어 있어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새로운 물리적 현상뿐 아니라 그래핀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주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가임이 이메일을 통해 필자의 발표가 그래핀 분야의 노벨상을 결정하는데 촉매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해오기도 하였고, 이를 계기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 혹은 노벨상급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고, 몇 가지 특별한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약력
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그래핀연구센터장
현) 그래핀스퀘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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