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오래전 인기를 끌던 개그콘서트 ‘마빡이’의 노래 가사다. 골목 어귀 전봇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말뚝박기하다 보면 밤이 찾아왔고 저녁 먹으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놀이에 정신이 팔렸던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놀다 코를 골며 곤히 잠든 어린아이처럼 놀이는 몰입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바둑을 두며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는’ 노인은 놀이의 즐거움이 몰입의 집중력으로 이어져 물아일체의 순간을 맞은 상태다. 가부좌 틀고 면벽수행하는 스님이 잠깐 졸았더니 하루해가 저물었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경우다.

놀이가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승부욕이나 경쟁심이 개입하면 게임으로 변하고 대중문화 컨텐츠가 된다. 어두운 오락실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화면에 몰두하는 청년 군상들을 보라. 한류 컨텐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모티브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술래잡기 게임이었다.
 
대부분의 문화는 놀이의 파편이요 부산물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사회는 놀이를 통해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법, 철학, 예술 등 인간의 모든 활동과 문화 현상에 놀이의 속성이 내포돼 있다. 재판도 규칙이 있는 게임이고, 전쟁도 승패를 가르는 놀이의 확장판이다.

놀이의 또 다른 측면을 보자. 인간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놀이는 재미 자체를 목적으로 다른 참여자와 함께 빠져드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유희다. 따라서 재미에 손상되지 않을만큼 최소한의 규칙과 절차가 설정된다. 본질적으로 무책임해서 정규 분포적 사고의 그물망에서 벗어난다. 놀이에서 졌다고 엄청난 돈을 손해를 보거나 얻어맞는 사람은 없으니 자유로운 정신 활동이 가능해져 마음 놓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게 된다.

그러다 상상의 고삐가 풀려 상상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문득 새로운 뭔가가 떠오른다. 유레카의 순간이다.

놀이는 중독성 높은 불광불급의 마취제다. 따라서 일터가 놀이터가 되면 겉으로는 무질서하고 산만해 보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성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놀이처럼 경쟁을 즐기는 대범한 참가자의 노래 경연을 떠올려보라. 수차례의 예선을 거치며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리다가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면 다시 집중력을 발휘해 최상의 퍼포먼쓰를 선보였다. 놀이처럼 경연을 즐긴 탓이다. 긴 코스를 달린 마라토너들이 극한의 한계에서 몰려오는 쾌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맛보거나 고산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정상에서 느끼는 클라이막스 하이 Climax high)도 순수한 몰입감이 선사해준 성취감이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서체를 만든 것도 단지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의 경력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서 특별한 의도 없이 외톨이나 괴짜들과 놀듯이 어울리며 켈리 그래프 강좌에 빠져 든 탓이다. 무심하게 어깨에 힘을 빼고 놀이처럼 즐겼던 시간이 뒤늦게 화학 작용을 일으켜 영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즐기니까 유연함이 생겼고 생각의 영역을 넓혔다. 넓은 영역의 생각이 새로운 개념의 조합을 가능케 했다. 구글이나 아이디오 같은 창의성의 선진 기업이 놀이터 같은 일터를 만드는 것은 그런 이유다.

놀이터 같은 일터란 무엇을 의미할까. 깔끔하고 모던한 책상과 의자, 편한 복장이 갖춰지면 멋진 아이디어가 튀어나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군대의 상황실이나 인사과에서 재미있고 특별한 아이디어를 기대하긴 어렵다. 문제는 멋진 회의실이 아니다. 그 속의 분위기다.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자유롭게 내뱉을 때 생각의 서너지는 극대화된다. IDEO의 ‘구조화된 혼돈의 회의방식’은 참여한 동료의 머리속을 뒤집어 아이디어의 발화점으로 연결되는 좋은 문화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키득키득 웃으며  자기 생각을 꺼낼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물론 여기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을 줄이고 선택의 결정권을 나눠라.

특히 저년차들의 참여를 독려해라. 놀이터 같은 일터란 어떤 이야기든 발표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뜻한다. 리더는 그런 분위기의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그날의 뉴스든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든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엔진에 윤활유를 치듯 참여의 정지작업을 시도해라.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약력
현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전 농심기획 대표이사
전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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