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투데이코리아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투데이코리아
투데이코리아=안현준 기자 |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를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확정 받으면서 ‘뉴삼성’ 구축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21일 <투데이코리아>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은 지난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는 이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4년10개월 만의 결론이다.
 
앞서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당시 이 회장이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던 것을 두고, 그에게 유리한 합병이 이뤄지도록 그룹 차원에서 제일모직 기업 가치는 높이고 삼성물산은 낮추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19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합병비율이 불공정했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에서 2144건에 달하는 추가 증거를 제출하고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이 회장의 분식회계 혐의 관련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등 혐의 입증에 주력했었다.

그렇지만 2심도 “검찰 측의 수사 어려움 고려하더라도 큰 공소사실에 대한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서 형사책임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원심의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 측이 주장한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회사 측의 재무제표 처리가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였고,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주위적(주된)·예비적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합병의 정당화를 위해 허위의 명분과 논리를 구체화했고 주주설명자료 등을 통해 허위 설명했다는 공소사실은 이 사건 합병의 목적, 결정 주체, 합병 시점의 선택, 합병비율 등이 모두 허위 내지 조작되거나 부정성을 띠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있는 것이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회장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거래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검찰 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에 따라 이 회장은 10년에 가까운 사법 리스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10월 6일(현지시간)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시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법인(SEMPHIL)을 찾아 MLCC 제품 생산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10월 6일(현지시간) 필리핀 라구나주 칼람바시에 위치한 삼성전기 필리핀법인(SEMPHIL)을 찾아 MLCC 제품 생산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 회장의 ‘뉴삼성’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약 10년 간 사법 리스크에 얽매이면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특히 이 회장이 미래 먹거리 사업 중 하나로 꼽은 바이오 사업 강화도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변호인도 이날 선고 뒤 “대법원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회장은 2020년 9월부터 4년5개월간 진행된 이번 사건에서만 1심 재판 96회, 2심 6회 등 102회 법정에 출석했다”며 “그 기간 동안 트럼프가 재집권해 관세전쟁을 촉발하면서 공급망 리스크 확대 등 글로벌 불확실성도 증대되고 있고, 회사 내에서도 DS부문의 실적 부분이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은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은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 상황 속에서 이재용 회장의 혁신적 행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규모 M&A와 등기 이사 복귀 등이 꼽히고 있다.
 
삼성은 2017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대형 인수합병(M&A)가 중단된 상황이었다.
 
이 회장도 올해 초 열린 삼성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력한 투자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5월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유로(약 2조37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공조시장 겨냥에 나섰다.
 
당시 삼성이 인수한 플랙트는 데이터센터나 대형 상업시설 등 중앙공조에 특화된 기업으로,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과 영국 이스트 미들랜드 데이터센터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앙공조 시공 사례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하만도 연내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디오 부문을 통한 전장 사업의 경쟁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하만이 이번 인수로 품는 ‘바워스앤윌킨스(B&W)’는 지난 30년간 하이엔드 스피커 시장의 선두를 유지해 온 브랜드로, 전 세계의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스피커를 제조하는 업체로 꼽히고 있다.
 
특히 하만은 이재용 회장이 당시 등기이사에 오른 뒤 처음으로 인수합병한 회사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하만은 인수 첫해인 2017년 영업이익이 574억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 반전에 성공한 뒤 2023년 1조17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1조원 시대를 열었다.
 
▲ ▲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회장이 5공장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회장이 5공장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또한 ‘뉴삼성’의 중심에 있는 바이오 산업에서의 대규모 투자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를 정하는 등의 신상장 동력 중 하나로 꼽았으며, 본격적인 경영에 나선 이후부터는 관련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꾸준히 거론했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중국 보아오포럼 당시 “삼성은 IT(정보통신), 의학(medicine), 바이오(biologics)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자신의 의지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아 5공장 건설 현장과 가동 중인 4공장 생산라인을 점검한 뒤 “현재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과감하게 도전하자.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자”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올해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하는 한편, 완공된 5공장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투데이코리아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투데이코리아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당장의 대형 M&A보다는 기존의 사업 경영 정상화에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그룹 컨트롤타워 복귀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5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한 상황”이라며 “최대주주로서 경영 전면에 나서 책임 경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등기이사로의 복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위기 대응력을 저하시켰다”며 “사업지원TF는 계열사간의 조율 기능에만 그치고 있어, 미래 먹거리 발굴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