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온 기자
▲ 김시온 기자
이례적으로 이른 폭염과 극한 폭우가 올 여름 한반도를 강타하며 농·축·수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농산물 수급 불안과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면서,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중고’가 닥쳤다.

특히 2025년 여름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염은 농작물을 말려 죽이고 가축을 집단 폐사시켰다. 전남과 경남 등 남부 지역의 폭염일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집중호우까지 반복되면서 수해와 함께 벼멸구 등 해충 피해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농민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갔다. 7월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농경지는 침수·유실·매몰 피해를 입었다. 일례로 충남 예산군 신암면의 한 멜론 농가는 비닐하우스 30개 동이 전부 잠기면서, 수확을 앞둔 멜론이 썩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가평 인근에서 포도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민은 “아무리 한탄해도 농작물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내년을 기약할 뿐”이라며 허탈함을 토로했다. 그의 말은 올여름 농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뜨거운 햇빛은 바다도 친구로 두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29일 고수온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전남 완도·신안 지역에서는 넙치 5만3000마리, 조피볼락 2만1000마리 등 총 7만4000마리의 양식 어류가 폐사했다. 제주도와 경북 등 다른 해역에서도 어류 폐사가 잇따랐다. 제주도는 양식장 피해 신고가 4건으로 늘었고, 경북 해역의 수온은 29℃를 넘나들며 폐사가 가시화되고 있다.

일부 어민들은 키우던 물고기를 바다에 방류하는 ‘눈물의 방사’까지 나섰다. 지금까지 방사된 물고기 수는 약 150만 마리에 달한다.

여기에 남해안과 동해안을 중심으로 아열대성 해파리인 ‘푸른우산관해파리’까지 대거 출현해 조업 방해와 어구 손상 등 어민들의 시름을 가중시키고 있다.

농·축·수산업계의 고통은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흉작으로 수급량이 줄면서 농축수산물 가격은 일제히 상승세를 보인다. 특히 추석 제수용 수요가 집중되는 사과·배·배추 등 주요 품목의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며,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치솟는 물가에 한숨을 쉬고, 상인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하고 있다.

정부 역시 민생안정과 농가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정부는 추석 민생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7만t(톤)의 성수품을 공급하고, 농축수산물 할인지원에 7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수입 과일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연장,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 확대 등 다양한 물가 안정 대책도 병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기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수급 관리나 할인지원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농업 구조 자체의 회복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기후 위기는 ‘이상 현상’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농가와 민생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농민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농업재해보험의 현실화를 꼽았다.

현재 정부는 피해 복구 단가 인상과 지원 항목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농민들은 보험의 보장 범위와 지급 기준을 근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한 기후적응형 농업 기술 지원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폭염과 가뭄에 강한 품종 개발, 스마트팜 보급, 재난 예보 시스템 정비 등을 통해 미래 농업의 회복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가와 민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후위기 시대, 농가의 고통에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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