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들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질문은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공개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행위는 당연한 것이었고 이에 보다 적합한 질문은 ‘이 영화를 관람해야하는 이유’가 더 알맞지, 굳이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질문을 하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옆에서 듣는 사람도 모두 이 질문이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관객들이 현재 극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관객수는 4250만명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경우 연간 1억 관객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간 관객이 1억명이 되지 못한 시기는 지난 2005년이 마지막이다.
 
특히 극장의 부진은 국내뿐만 아닌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 관련 통계 사이트 더넘버스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시장 박스오피스 매출액은 약 86억4700만달러로 코로나 직전이었던 지난 2019년(약112억2억6천만 달러)보다 크게 낮았으며 전년 대비로도 3억달러 이상 줄었다.
 
이 같은 관객 감소 현상 배경에 대해 OTT의 등장, 티켓 가격의 상승, 볼만한 영화의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언급되지만 극장의 파이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만한 마땅한 방안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 속 영화 ‘바빌론’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의 극장 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위플래시’, ‘라라랜드’를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 속 미국 할리우드에 속한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그린다.
 
스타 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뛰어난 표정 연기로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른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영화 자막 제작자 페이 주(리 준 리) 등 모두 할리우드의 부와 명예에 취해있다.
 
하지만 유성영화가 등장하며 모든 분위기는 바뀐다.
 
영화는 이제 자막이 아닌 배우의 목소리로 대사를 표현해야했으며 이에 촬영 방식 역시 오디오 수음 환경이 가장 중요시 된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넬리 라로이는 본인의 강점을 살린 연기를 전혀 펼치지 못하며 최고의 스타였던 잭 콘래드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 보려 하지만 거대한 시대의 물결 속 작은 발버둥에 그칠 뿐이다.
 
1920~30년대 영화 산업이 음성의 등장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맞이한 것처럼 어쩌면 지금의 영화 산업은 OTT라는, 거대한 플랫폼 변화의 물결을 마주했다. 이러한 변화 속 관객 수 감소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일수도 있다.
 
영화 속 잭 콘래드는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낸 평론가 엘리노어 세인트존(진 스마트)을 찾아간다.
 
그녀는 비판적인 글을 쓴 이유를 묻는 잭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유가 없다”
 
그녀는 당신의 시대가 끝났을 뿐 이유가 없으니 묻지 말라고 말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잭 콘래드가 있을 것이고 살아남는 것은 스타라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잭 콘래드’와 지금의 현실 속 극장은 변화 속 자신의 가치와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항상 어두운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온다.
 
당장 영화 ‘바빌론’이 많은 부분을 오마주한 ‘사랑은 비를 타고’ 역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를 그리고 있으나 해당 영화는 유성 영화의 새로운 스타 탄생에 중점을 뒀다.
 
시대의 변화는 이전에 주목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준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넷플릭스의 투자가 있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미국 매체 POPVERSE는 메기 강 감독과 Ankler의 인터뷰를 인용해, 강 감독이 처음 영화 제작 제안을 소니에게 건넸으나 거절당했으며 이후 넷플릭스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밀양’과 ‘버닝’의 거장 이창동 감독도 신작 ‘가능한 사랑’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영진위의 제작 지원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넷플릭스 행을 택했다.
 
극장 입장에서는 OTT의 부상이 위협이 되고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도리어 더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하여 극장의 가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기자간담회에서 말하는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는 모두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거대한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여러 관객이 동시에 한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보며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우는 공동의 경험 등은 극장만이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럼에도 극장이 대중에게서 외면 받는 데는, 극장의 잘못이 아닌 그저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일 뿐인지도 모른다.
 
영화 ‘바빌론’ 속 평론가 엘리노어는 잭 콘래드의 인기가 떨어진 것에 이유가 없다면서도 그 만의 가치는 불변할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백년 후 언제라도 당신 영화를 다시 트는 순간, 당신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 위로한다.
 
비록 현실의 극장 역시 점차 외면을 받을지언정, 극장 안으로 발을 딛는 관객이 존재하는 한 극장만의 가치는 불멸할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