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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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망령에 발목 잡혀 재가동 지연
30년 설계수명을 채운 1호기는 2007년 6월 가동을 중단했다가 정비를 거쳐 10년간 연장운전이 가능하다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판단에 따라 이듬해 1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나서 재가동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들어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한 덕분이었다.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예상되자 한수원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여론 환기에 나선 조기 대응이 주효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경각심이 고조된 2011년 4월 고리 1호기에서 전기제어장치 고장으로 가동이 멈추는 사고에 이어 2012년 2월 전기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5년 에너지위원회에서 1호기의 영구 가동정지를 권고했고 한수원은 2017년 6월 19일 원자로를 영구 정지하고 폐로 절차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1호기는 그래도 10년간 연장 운전까지 해보고 폐로의 운명을 맞았지만 2, 3, 4호기는 40년 가동연한을 채운 뒤 아직 재가동 승인을 받지 못해 차례로 멈춰선 상태다. 고리 2호기는 2023년 4월, 3호기가 2024년 9월, 4호기가 이달 6일 가동을 중단했다. 올해 12월 22일에는 전남 영광의 한빛 1호기까지 연한 만료로 멈추게 된다. 국내 원전 26기 중 15%를 세워놓고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맞춰야 할 처지다. 최근 전기차 보급과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활용이 늘면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기상이변에 따른 폭염이 냉방 전력수요를 부추기고 스마트팜 등의 작물 재배도 전력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졌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더위가 심한 8월 중 최대전력수요가 97.8GW(기가와트)에 달해 작년 8월 기록한 역대 최대수요 97.1GW를 넘어설 전망이다.
원전 가동연한은 기한을 채우면 바로 폐로하라는 지침이 아니라 그간의 운용 기록과 설비 상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보수를 거쳐 계속 운전 여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막대한 비용과 수년의 건설 기간이 필요한 원전을 정밀 진단해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안정적으로 장기 가동하는 절차로 볼 수 있다. 원전 건설과 가동 경험에서 앞선 미국과 일본은 20년 단위로 계속 운전을 승인한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가동한 원전을 20년씩 2회 연장해 2050년대까지 80년간 쓸 계획이라고 한다.
계속 운전 신청 등 절차 개선해야
전력 당국은 당초 고리 1호기도 20년 연장을 원했으나 국내 첫 사례라서 환경단체와 주민 반발을 의식해 10년만 연장했는데 이 사례가 그대로 굳어졌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영향으로 고리 2호기부터 계속 운전 신청과 후속 절차가 늦어져 언제 재가동할 수 있을지 모른 채 기다리는 형편이다. 원전을 재가동하려면 가동연한 종료일 2~5년 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계속 운전을 신청해야 하는데 한수원이 탈원전 정책에 눌려 눈치를 보다가 1년 전에 겨우 신청했다. 계속 운전 10년을 산정하는 시점도 가동연한 종료일로 하도록 규정돼 있어 서둘러 절차를 진행한다 해도 고리 2호기 재가동 기간은 6~7년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절실한 현실에 비춰 무책임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AI까지 활용한 4차 산업 발전에 맞춰 전력수요는 갈수록 급증하고 계절이나 기상 여건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 원전 의존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계속 운전 연한을 미국과 일본 수준인 20년으로 대폭 올리고 신청 절차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 법규 개정이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신청 시기를 연한 종료 전 5~10년으로 앞당기도록 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했으나 이재명 정부의 정책과 집행 의지가 관건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 폐기에 머뭇거려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 진출을 이어갈 체코 원전 프로젝트와 대미 관세 협상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원전 생태계의 충실한 복원이 시급하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