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진 정책사회부 기자
▲ 김유진 정책사회부 기자
“행복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요”
 
결혼을 석 달 앞둔 예비 신부 김지연씨는 한창 결혼 준비로 설레고 바빠야 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결혼대행업체(웨딩플래너)와의 갈등으로 결혼 준비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알아서 해주니까 편하겠지’라는 생각에 덜컥 진행한 계약이 스트레스의 시작이었다. 계약 당시 안내받지 못한 추가 옵션 비용이 뒤늦게 청구됐고, 촬영 일정도 일방적으로 통보됐다.
 
업체 측에 이의를 제기하자 되돌아온 건 200만원이 넘는 위약금 고지서였다. 계약 조항에 따라 정당하다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해당 조항은 계약 당시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결혼준비대행업 분야의 소비자피해상담 접수 건수는 2021년 790건에서 2022년 1117건, 2023년 1293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등 웨딩 산업 전반의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예비부부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드메 주업종의 수입 금액은 2019년 1170억원에서 2023년 3147억원으로 168.9%(1977억원) 급증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스튜디오는 해당 기간 559억원에서 1172억원으로 613억원, 드레스 업종은 611억원에서 1975억원으로 1364억 각각 증가했다.
 
특히 드레스 업종의 경우 5년 사이 사업자는 고작 7곳, 개인은 42곳 소폭 늘어난 것에 비해 전체 수입금액은 무려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경쟁은 늘지 않고 가격만 오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비부부들에게 계약서를 꼼꼼히 읽으라는 조언밖에 해줄 수 없는 현실”이라며 “위약금이나 일방적인 조건에 동의한 상태라면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래너가 업체와 예비부부 사이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갖다 보니, 중간에서 정보 비대칭이 생긴다”며 “이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가 필터링되거나 축소돼 전달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이어지자 웨딩 산업 전반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정부와 관계 기관도 제도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개월간의 실태조사를 통해 최근 결혼준비대행업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부당한 계약 조건 등을 개선하기 위한 결혼준비대행업 표준 약관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웨딩플래너 등은 상품 구성과 환불 조건, 계약서 제공 여부 등 서비스 내용 및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국정기획위원회는 ‘결혼 서비스 가격 투명화’를 신속 추진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예식장이나 결혼 준비 대행 서비스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세부 가격 및 환불 조건 등에 대해서 표시하는 것도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서비스 조건이라든지 환불 조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돼 있지 못해 불이익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제도 개선하겠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정부는 제도 개선으로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나, 정작 예비부부들은 여전히 ‘혼자 싸워야 하는 계약’ 앞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스드메’ 패키지 상품의 경우 하나의 패키지처럼 판매하지만 각각 다른 업체가 연결돼 있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명확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
 
또한 일부 웨딩플래너는 특정 업체와 리베이트 관계를 맺고 있어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상품을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웨딩 산업 전반에 걸친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웨딩플래너 역시 예비부부의 편에 서 있는 중개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정고운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가격조사팀장 “정부는 인센티브 검토, 위반업체 행정 처분 강화 등을 통해 결혼준비대행업 표준계약서 사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가격 투명성 확보와 정찰제 확대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웨딩 업계는 현금 지급 강제, 제휴업체 미공개 등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소비자들은 계약 조건을 확인하며 피해 예방에 노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2030세대 사이에선 결혼식 자체를 ‘소비’로 인식하며 “결혼은 해도 예식은 하지 않겠다”, “스몰웨딩도 비싸서 포기한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설렘으로 시작했으나 불합리한 시스템과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힌 예비부부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 마저 느끼고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의 약속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억울한 계약과 갈등으로 얼룩진다면 그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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