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훈 경제산업부 기자
▲ 김지훈 경제산업부 기자
오는 10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초안 발표를 앞두고,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단순한 의학적 논의 차원을 넘어, 게임을 둘러싼 산업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 나아가 미래 세대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이다.
 
이번 논란의 불씨는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과몰입(Gaming Disorder)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ICD-11)에 포함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KCD 반영 여부를 두고 의료계와 게임업계, 정부와 학계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사회적 갈등은 반복됐다.
 
이런 상황에서 통계청이 KCD-10 개정 초안을 내놓을 10월이 다가오자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 기준을 따르는 관행에 비춰볼 때, 게임이 질병코드에 등재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WHO 결정 직후 민관협의체를 꾸려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지만, 논의는 수년째 답보에 빠진 상태다. 한때 올해 8월 재가동 전망이 나왔으나,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그 사이 의료계는 조기 진단과 치료 필요성을 내세워 도입을 주장하는 반면, 게임업계 등에서는 과학적 근거 부족과 산업 위축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는 등의 입장 차이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최근 발언을 두고 관련 논란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는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문화예술의 한 축이자 종합예술”이라며 “질병코드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과학적 근거의 부족과 사회적 합의 부재, 산업 위축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언급하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논의 과정은 오히려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연구진은 ‘기술발달에 따른 콘텐츠 여가 확산과 억압 정책’ 보고서에서 “게임 질병코드화는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연구진은 건강을 이유로 게임 이용을 치료해야 할 병리 현상으로 보는 ‘의료화’가 개인에 대한 억압 구조로 기능하고 있음을 고찰했다.
 
연구진은 “게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게임과 게임 플레이, 게이머들과의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요인을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게끔 한다”며 “정신의학은 몇몇 범죄 사건의 원흉으로 게임을 지목하고, 게이머를 잠재적 범죄자이자 환자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실효성과 과학적 근거가 검증되지 못한 게임중독의 의료화는 진단과 처방 모두를 개인에게 돌리고, 모든 문제의 원흉을 게임으로 간주하는 ‘게임의 악마화’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과거 ‘불량 만화’, ‘바보상자’ 등에서 시작한 대중문화 비판 담론이 ‘불온 통신’과 ‘사행 게임’을 거쳐 스마트폰과 도파민으로 넘어간 것”이라고도 봤다.
  
특히 게이머들의 반발도 거센 상황이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법률적 근거 없이 ‘인터넷 게임’을 중독관리 대상으로 특정해온 행정 오류를 공개 지적하며, 이에 대한 청원에 1761명의 게이머가 동참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법적 근거 없는 ‘게임 중독’ 용어 사용의 즉각 시정과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의 지침 재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협회장 이철우 변호사는 “게임은 이미 법적으로 문화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민 다수가 즐기는 취미이자 산업”이라며 “법적 근거도 없는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게임은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사회적 연결망, 나아가 휴식과 성찰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질병’이라는 협소한 틀로는 이 모든 가치를 담아낼 수 없다.
 
질병코드 등재 여부를 둘러싼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게임은 우리 사회의 ‘질병’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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