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기업 입법, 재정 마중물 가로막아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이재명 대통령은 내년 예산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뿌릴 씨앗이 부족하다고 밭을 묵혀놓는 우를 범할 수 없다”고 확장 재정의 필요를 강조했다. 씨앗을 빌려서라도 농사를 준비하듯 적자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성장의 마중물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도 “지금 한 됫박 빌려다가 씨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 수확할 수 있으면 당연히 빌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정 지출을 씨앗에 비유한 설명으로 이해된다.
 
정부는 빚을 내서라도 성장하겠다는 각오로 지출을 대폭 늘린 728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확정했다. 총수입은 674조2000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3.5% 소폭 증가하는데 그칠 전망이지만 지출은 8.1% 54조7000억원 증액한 적자 예산이다. 우선 110조원의 국채를 발행해 적자분을 채울 방침이라고 한다. 내년 국가채무는 14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 이자 비용만 34조원에 달해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의 골이 갈수록 깊어진다.
 
정부는 인공지능(AI) 기술과 연구·개발(R&D) 등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우는 사업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빌려다 뿌리는 씨앗을 허투루 쓰지 않고 풍성한 소출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사업별 항목을 보면 성장으로 연결되기보다 선심성 예산에 가까운 지출이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의식한 항목들이 포함돼 여야 공방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재직 당시부터 주장해온 기본소득을 내년 인구 소멸 지역 6개 군에 시범 도입키로 했다. 이른바 ‘농어촌 기본소득’이다. 인구 소멸 위험 정도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의지 등을 감안해 대상을 선정, 내년 1월부터 약 24만명에게 월 15만원씩 지급할 계획이다.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여건에서 씨앗을 빌려다가 밭에 파종하지 않고 양식으로 나누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
 
인구 감소 지역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월 4만원 상당의 점심값을 지원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직장인 든든한 한 끼’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79억원을 들여 5만4000여명에게 지원하겠다는 방침인데 “왜 세금으로 직장인 밥값을 지원해 주느냐” “직장 없거나 도시락 싸오는 사람에게는 지원이 없느냐”는 등 반발이 따른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위한 국비지원금 1조1500억원도 예산에 포함됐다. 주4.5일제 근무를 도입한 중소기업 지원금과 아동 수당 지원 확대도 반영됐다. 이들 예산은 근로자나 농어촌 주민들을 위한 복지 확대로 간접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성장과 직결하는 씨앗으로 보기는 어렵다. 당장 빚을 내서 착수해야 할 만큼 시급하게 보이지 않는다.
 
벼랑끝 위기에 처한 기업에 활로 필요
 
이 대통령은 씨앗 부족을 걱정할 정도로 성장 엔진에 예산을 집중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여당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입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대미 수출이 격감하는 시기에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필요하며 상법 개정 역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증원 등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는 2일 노란봉투법을 의결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원청업체를 상대로 노조 교섭이 가능케 하고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까지 제한해 임단협을 앞둔 업계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당장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성명을 내 현대자동차 사측이 판결까지 받아낸 200억원대 손해배상을 면제하라고 주장했다. HD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 노조는 합병발표에 반발해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정부는 노조의 이런 움직임이 노란봉투법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의 협력사 노조와 네이버의 자회사 노조는 본사와 직접 교섭에 나섰다. 개정 상법 역시 경영권 보호를 위한 조치가 아직 미흡한 현실에 비춰 소액주주 보호에 치우쳤다는 경영계 반발을 자초했다.
 
넓은 밭에 파종해 소출을 내는 투자는 주로 민간기업들이 맡아서 할 일이다. 정부는 투자가 부진한 영역에 길을 터줘 기업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고 재정 지출 시기와 규모를 조절하거나 조세감면을 통해 민간 참여를 유도한다. 그런데 토질이 떨어져 성장 전망이 어둡게 보이면 기업은 투자를 꺼리게 된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도 기업이 따라오지 못하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이 활발하게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만들어주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게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 할 과제다. 일단 시행해 보고 부작용이 크면 고치자는 변명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기업들은 지금 존속이 가능할지 스스로 묻는 엄중한 갈림길에 서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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