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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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치아 교정기는 경제적 능력의 상징이 된다. 상대가 마음에 들면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으리라. 하긴 우리에게도 치아교정기는 부잣집 여학생의 상징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TV와 전화기, 피아노가 있는 2층 양옥집 딸이였을 것이다. 최근 태국의 경제 사정이 그 당시 우리나라 수준인 듯하다. 그녀들에게 치아교정기는 치열을 고르게 하는 의료기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사랑을 구하는 장식품이다.
이런 맥락을 읽어내야 과시욕을 자극할 또 다른 솔루션을 찾아 낼 수 있다. 사람들의 욕구가 구매로 연결되는 이유를 관찰해야 통찰력있는 마케터로 등극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혁신의 아이콘, 질레트로 가보자. 제 살 깎아먹기(Cannibalization)는 성능을 개선해서 신제품을 출시하면 그 이전 제품이 안 팔리는 경우를 뜻한다. 질레트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피부의 털을 섬세하게 잘라내기 위해 면도날 수를 3중날, 4중날, 5중날로 촘촘하게 늘려가며 새로운 모델을 연이어 출시한다. 그런 질레트가 제모하는 여성들을 위해 무얼 했을까? 세심하게 관찰했다. 여성들이 미끄러운 욕조 모서리에 다리를 올려놓고 다리털을 밀다 미끄러져 상당수가 면도기 모서리에 살을 베는 일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손잡이가 둥근 여성용 면도기 ‘질네트 비너스’는 이렇게 태어났다.
성인들과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는 아이도 특별한 관찰의 대상이다. 목욕과 칫솔질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다. 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의 결과는 무엇이였을까
칫솔을 장난감처럼 만들었다. 칫솔 손잡이를 두껍게 만들어 그 속에 작은 전구를 넣어 치솔질을 하면 불이 켜지며 경쾌한 노래까지 울려나오게 했다. 치솔질의 지겨움을 즐거운 놀이의 순간으로 바꿔 치솔질을 습관화 시켰다. 이번엔 대형마트다. 한국은 외국계 대형 마트의 무덤이다. 월마트, 까르푸도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밀려 그 자취를 감추었다.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외국계 대형 할인마트가 있다. 코스트코다.
그들은 한국 중산 소비층의 이중적 구매 행태를 꿰뚫어보았다. 실용적이면서도 동시에 감성적인 구매 습관을 제품 진열에 적용시켜 트레이딩 업 앤 다운 전략을 병행한 것이다. ‘트레이딩 업’이란 감성적인 만족을 위해 비싼 제품이라도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 성향이고 ‘트레이딩 다운’은 반대로 더 싸고 양이 많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성향이다. 실제로 코스트코 매장에 가보면 최상의 명품 시계나 와인과 함께 저렴한 생필품과 식재료를 동시에 구매할 수 있다.
일상적인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트레이딩 다운’과 예상치 못한 프리미엄 상품을 발견하는 ‘트레이딩 업’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게 만들어 재방문의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합리적인 가성비 구매와 고급 취향의 만족감까지 한꺼번에 맛보는 구매 경험을 그들은 ‘보물 찾기’라고 부른다.
마케팅의 해답은 소비자에게 있다.
소비자의 행동 속에 통찰력의 뿌리가 있다. 스웨덴의 디자인 그룹 ‘Form Us with Love’의 초 홀더는 매우 단순해 보이는 관찰의 결과를 그냥 두지 않고 새로운 제품으로 연결한 좋은 사례다. 무엇을 관찰했을까? 초에 불을 붙이다가 손을 데어본 누구나의 경험이다. 그들은 초 홀더에 손가락을 넣지 않고 안전하게 불을 붙일 수 있는 홈을 만들었다.
관찰이 통찰로 이어진 사례는 자연에도 있다. 연꽃잎의 표면은 물기나 먼지가 없이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전자현미경으로 이 연꽃잎을 살피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돌기가 산봉우리처럼 펼쳐지고 나노미터 크기의 돌기가 나무처럼 배열되어 있어 물방울이 퍼지지 않는 동시에 먼지를 쓸어내는 자기 세정 효과를 보인다.
이것이 자동차 사이드 미러 필름의 원리다.
관찰이 스마트(SMART)한 통찰이 되려면 그 결과가 구체성이 있는지(Specific), 측정은 가능한지(Measurable), 얻어낼 수 있는지(Attainable), 현실적인지(Realistic), 시간 계획이 가능한지(Timeline) 눈여겨보라.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약력
현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전 농심기획 대표이사
전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