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아무리 찾아도 일자리가 없다. 적성에 맞는 곳이 없다. 보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직장 분위기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그만뒀다.
 
그래서 청년들은 고용 통계에 ‘쉬었음’ ‘그냥 쉬었음’ 등으로 표현되는 실업자군(群)으로 분류된다.
 
청년 실업률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그동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수없는 대책들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 대응에 나섰다. 정부와 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청년 채용 증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지난 9월 15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8대 그룹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청년 고용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채용 확대 요청이었다.
 
이어 16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기업들에게 특별히 요청드린다.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물론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기업들을 향해 청년 고용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러자 18일엔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채용 계획을 발표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삼성은 향후 5년간 6만명, SK 올해 8000명, 현대자동차 올해 7200명 내년 10000명, LG 3년간 10000명, 포스코 5년간 15000명, 한화 올해 5600명, HD현대 5년간 10000명 등등이다.
 
이어 청년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이 대통령은 서울 마포구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열린 ‘2030청년 소통.공감 토크 콘서트’에서 청년들의 애로를 듣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취업 확대 정책도 내놓는다.
 
정부와 기업이 국가적 현안을 놓고 손발이 척척 맞는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있겠는가.

지난 15~19일 닷새 간에 진행된 청년 고용 방안 스케쥴은 벼락 같았다.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히 보아온 장면이다. 대통령이 주요 그룹 총수들과 만난 뒤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앞다퉈 투자, 채용 계획을 쏟아놓는다.
 
기업의 가장 핵심 경영 요소인 투자와 채용 문제가 정부의 요청에 따라 뚝딱 급조될 사안인가.
 
정부 측은 어디까지나 ‘협조 요청’이라지만 누가 이를 곧이 듣겠는가. ‘암묵적 강요’ ‘협박’이라는 말이 기업 관계자들의 표현이다.
 
과거 이런 식의 투자나 채용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사후 검증도 없었거니와, 애당초 이행될 수도 없는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제발 큰 성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청년 실업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청년 실업
 
얼마나 심각한가.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보고서 내용. 지난달 취업자는 2896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6만6000명(0.1%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연령대 별 온도차는 크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전년보다 21만9000명이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폭 감소라고 한다.
 
반면 60대 이상 취업자는 40만1000명이 증가, 전체 취업자 증가에 기여한다.
 
취업 상태가 아닌데도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2641000명. 이중 30대 ‘쉬었음’은 32만8000명, 20대 ‘쉬었음’은 43만5000명에 달했다.
 
청년 실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우선 다른 산업 분야 고용에 영향을 많이 주는 제조업과 건설업 부진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산업의 자동화, 디지털화에 의한 고용 흡수력 감소에다 개기업들의 경력사원 선호 추세도 큰 몫을 한다. 구조적이다.
 
‘쉬는 청년’ 중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 문제도 심각한 사회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조사한 ‘일 경험 있는 쉬었음’ 설문조사 내용을 살펴보자.

“회사 다녀도 돈이 든다. 하루에 2만원씩 쓰고 월 200만원 받느니 그냥 집에서 쉬면서 아껴 쓰는게 낫다” “스트레스가 감당 수준을 넘는다. 기대치에 비해 열악한 일자리가 정말 많다”
 
직장을 그만 둔 청년들은 ‘왜 떠났을까’ 퇴사 이유로 30~40대는 급여와 보상 불만족을 가장 큰 이유(33.7%)였고, 다음은 워라벨 부족(28.4%)‘\, 업무 직무 적성 불일치(24.2%)순이었다.
 
19~29세 연령층의 퇴직 사유는 좀 다르다. 업무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31.4%)가 1순위고, 급여 보상 불만족(24.8%), 워라벨 과 조직 문화 문제(17.1%)순이었다.
 
청년들이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단순히 야근이 싫다기보다, 성과와 무관한 불필요한 야근이 많다거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결여된 데 있다는 분석이다.
 
’쉬었음‘ 경제적 손실 연 1조원 넘어
 
한국경제인협회가 실시한 ’쉬었음 청년 증가에 따른 경제적 비용 추정‘ 연구 용역 보고서를 보자.
 
2019~2023년 5년간 쉬었음 청년에 의한 경제적 비용은 53조3998억원으로 추정됐다. 연평균 10조68000억원이다.
 
’쉬었음‘청년 경제적 비용 증가 이유는 쉬었음 청년 인구가 늘어난 데다 취업했을 경우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고학력자 비율도 높아졌기 때문.
 
보고서는 ’높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이 쉬었음 상태에 빠지면서 경제적 비용을 더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청년 고용 정책들, 실효성 있는가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만큼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대응도 수도 없이 시행되고 있다.
 
정부의 청년 정책.취업 사이트인 ’온통청년‘에 따르면, 갖가지 청년 정책은 중앙 지방정부 것을 모두 합하면 3000여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 도약 장려금, 청년 일자리 경험 사업, 청년 도전 지원 사업, 국민 취업 지원제도 등등...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가장 근원적인 문제고 시급한 과제인데, 일자리 공급 대책은 별로고 구직 지원 쪽에 정책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대책 없는 수요대책이다.
 
정책 갯수만 늘려가며 실적 쌓기, 전시 행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청년 실업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는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쉬는 청년‘ 문제는 우리만의 고민은 아닌성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을 뜻하는’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ning)족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니트 비율이 한국은 2014년 17.5%에서 2022년엔 18.3%로 상승했다. 니트 비율이 월등 높은 이탈리아는 같은 기간 중 27.7%에서 22.9%로, 미국은 16.4%에서 14.5%로, 영국은 14.4%에서 10.6%로 낮아졌다.
 
OECD 평균 니트 비율은 이 기간 15.7%에서 12.6%로 낮아졌으나 우리만 높아진 것이다. 정책효과가 없었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고용 정책들이 효과를 내려면 먼저 고용 증대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들부터 없애거나 줄여야 할 것이다.
 
노란봉투법이나 주 4.5일제와 같은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을 밀어 붙이면 기업들은 청년 채용 대신 로봇, 인공지능 등으로 인력 대체를 적극 추진하려 할 것은 불문가지다.
 
기업측은 “사람을 더 뽑고 싶어도 경기가 나빠질 때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신규 채용을 최소화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강화에 더 초점이 맞취지는 고용 관련 법제화는 청년 일자리 증대와는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부때 근로자 임금 올려주자고 실시한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당초 취지와 크게 엇나가는 부작용만 초래하지 않았던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자 기업들은 채용을 확 줄이고, 기계화로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어 저임 근로자들 피해로 돌아온 경험이 생생하다.
 
정책은 정교하지 못하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실용(實用)을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취업난의 원인으로 노동조합과 고용 경직성을 지목한 이재명 대통령의 시각은 탁월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년 타운홀 미팅에서 대기업들이 청년 신규 채용을 꺼리는 원인으로 “노조 이슈가 있다”며 “고용 유연성 확보가 안되니까 필요할 때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뽑거나 직무 전환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년 보장과 해고 금지 등을 앞세운 노조 때문에 고용 경직성이 심해져 청년 채용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사실 선거에서 노조의 적극적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강성 노조의 경직한 태도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신선하다. 어찌보면 충격적이다.
 
그러한 대통령의 시각이 향후 입법, 정책 시행 과정에서 적극 반영된다면 ‘쉬는 젊은이들’ 청년 실업 문제 완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실 기업들과 정부의 입 맞추기 식 청년 채용 계획을 믿기 어렵다. 기업 환경이 좋아지고, 고용 유연성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펼쳐질 때 고용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의 ‘실용(實用)’을 청년 실업 문제에서부터 기대해 보자. 강성 기득권 노조를 어떻게 설득해 낼지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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