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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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수많은 시험이 치러지지만 수능만큼 우리나라에서 중요도를 가지고 주목을 받는 시험은 없을 것이다.
수능 당일 공항의 비행기가 멈추는 등 한 국가의 인프라가 오롯이 수험생들을 위해 투입될 수 있는 것은, 수능이 가진 중요성을 국민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공감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만큼 수능은 영화와 드라마에 있어 중요 소재로 사용되어왔다.
수능 중심의 경쟁 입시, 이로부터 비롯된 사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콘텐츠가 있는 한편,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수험생들의 노력과 꿈, 공부 방법 자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도 나오는 등 시선과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2022년 개봉한 독립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역시 수능을 앞둔 현 시점에서 다시금 떠오르게 만드는 영화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엄밀히 말하면 수능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진 않지만, 수능을 전후로 달라져버린 친구 사이의 관계를 그렸다는 점에서 스무살 무렵의 삶을 독립영화 특유의 소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주에서 기숙사 생활을 함께하는 정희, 민영, 수산나는 그들이 함께했던 ‘삼행시 클럽’의 해체 선언문을 낭독한다. 이들은 수능과 졸업 후에도 관계를 이어가며 다시금 클럽 활동을 이어나갈 것을 기약한다.
하지만 이들의 길은 수능 이후 함께하기에는 너무나 달라져버린다. 대학에 큰 뜻이 없었던 정희는 동네 테니스장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민영은 대구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다. 수산나는 더 멀리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이들은 간간히 화상으로 ‘삼행시 클럽’ 활동을 이어가려 하지만 민영은 대학 생활과 새로 만난 동기들과 함께하느라, 수산나 역시 해외에서 생활과 시차 등으로 인해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동네에 남은 정희만이 이전의 우정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영화의 본격적인 사건은 방학을 맞이한 민영이 정희를 서울 자취방으로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초대를 받은 정희는 들뜬 마음에, 그들이 고등학생 삼행시 클럽 시절 작성한 ‘할 것’ 리스트에 필요한 물품을 싸들고 단걸음에 상경한다.
하지만 대구에서 서울로 편입을 준비 중인 민영은 그런 정희를 반기는 둥 마는 둥이다. 민영은 자신의 친구 정희보다 수업을 들었던 교수에서 성적을 올려달라는 메일을 어떻게 보낼까에 더 열중이다.
정희는 친구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민영은 자신의 성적만이 관심사다. 그렇게 쌓인 정희의 서운함이 결국 터져버리지만, 민영은 오히려 교수가 성적 정정 요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자 정희가 씻고 있는 사이 혼자만 남겨둔 채 대구로 떠나버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민영의 자취방에 홀로 남겨진 정희는, 민영의 일기장 등을 살펴보며 민영에게도 남몰래 가졌던 공부 외에 꿈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그런 정희는 민영에게 경제력, 사회성 등에 대한 자신만의 성적표를 남긴다.
어떻게 보면 ‘성적표의 김민영’은 단순히 스무살이기에 경험하는 친구 사이의 서툼, 그로부터 비롯된 서운함 등을 그리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같은 관계 변화의 분기점에 수능을 자리 시켜, 수능이 단순히 개인 인생의 변곡점뿐만 아니라 주변인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시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같은 공간에서 수능이란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시간을 보내던 환경의 관계와, 수능 이후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관계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환경 변화 속 스무살의 서툼과 서운함을 통해 수능 이후에도 또 다른 성장통을 마주할 수 있음을 그린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수능이라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통과 의례가 불러오는 변화의 가장 세심한 지점을, 독립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수능을 앞둔 이 시점, 한국 독립영화의 매력을 통해 ‘수능’이란 시기를 지난 이들에게 그 시절을 추억하기에 좋은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