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민석 기자
▲ 진민석 기자
한·미·일 정상외교가 새 얼굴들로 다시 짜이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외교 무대에 올라 있는 상황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임기를 시작한 직후부터 한국과의 조율을 주요 외교 안건으로 상정했다. 

특히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 국제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세 인물이 각각의 조합으로 처음 마주 앉은 이번 회담들은 한미, 한일 관계가 새 구도에서 다시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비슷하다. 모두가 ‘협력’, ‘공조’, ‘안정’을 말했다. 한미는 동맹과 공급망을 묶어 관리하겠다는 식으로 정리됐고, 한일은 관계 복원과 협력의 틀을 유지하자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다만 이번 회동을 관통한 메시지는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낼 수 있나”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동시에 한국을 향했다.

미국 쪽 계산 방식은 노골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은 언제나 ‘얼마나 낼 건지’와 붙어 있다. 이번에도 방점은 안보 문구가 아니라 돈과 공장에 찍혔다. 

미국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더 끌어가겠다는 의도를 사실상 숨기지 않는다. 그것도 일반적인 투자 유치가 아니라 수천억달러 규모의 제조·에너지·첨단 공급망 자본을 미국 본토에 박아 넣으라는 요구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화법은 늘 비슷하다. “한국은 훌륭한 파트너”라는 칭찬과 “그만큼 더 할 수 있다”는 압박이 한 문장 안에 병존해 있다. 이런 식의 거래형 접근은 한국 안보를 ‘미국과의 생존 보장’이 아니라 ‘얼마를 낼 수 있는가’로 바꿔버린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는 한미일의 틀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미·중 간에 독자적 빅딜을 띄울 여지를 계속 열어두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대화에서 “이미 많은 것을 합의했다”는 식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 건, 필요하면 워싱턴과 베이징이 직접 조건을 맞출 수 있다는 신호다. 이건 한국과 일본이 기대하는 ‘한미일 공조’라는 안정적 틀 위에, 언제든 미·중 양자거래가 덮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만 확실히 잡으면 안전하다”는 오래된 전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동맹의 언어로 출발해도 마지막은 항상 장사다. 그리고 그 장사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빠르게 교환 가능한 변수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일본의 계산법은 결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부담을 돌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카이치 총리는 처음부터 ‘강한 일본’을 전면에 걸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벌써 ‘여자 아베’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실제 정책도 그 방향을 따라간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다. 전후 일본의 금기선으로 남아 있던 장거리 타격 능력, 선제적 대응 능력, 잠수함 전력 확충 등의 영역을 국가 전략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일본 정부는 안보 관련 3대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를 다시 손보는 방안을 서두르고 있고, 헌법 9조 개정 논의까지 공론화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전수방위에서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복귀하려는, 전후 체제 자체에 대한 수정 시도다.

이 노선은 늘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온다. 메시지는 이렇게 번역된다. 

“동북아 안보 불안을 같이 관리하자. 한일 협력을 더 깊게 묶자. 한미일을 더 구조화하자.” 

표면적으로는 공동 대응이다. 그런데 실물은 일본의 재무장을 한국이 사실상 묵인·동조하는 구조에 가깝다. 일본이 군사적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는 과정이 ‘동맹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합리화된다. 

그 순간 한국은 일본의 방위력 정상화, 나아가 헌법 개정 드라이브에 들러리를 서는 그림이 된다. 특히 자위대를 사실상 정규군 지위로 끌어올리려는 시도, 그리고 그에 필요한 방위비 폭증은 결국 동북아 군사 질서 자체를 바꾼다. 그 변화는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 한국의 전략 옵션을 좁힌다.

즉, 미국은 “동맹의 가격표”를 들고 오고 일본은 “군사적 정상국가 복귀 설계도”를 들고 온다. 두 문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한국에게 선(先)부담을 요구한다. 

미국식 요구는 한국 기업과 한국 재정이 먼저 돈을 내라는 구조다. 일본식 요구는 한국이 일본의 방위 재편을 외교적으로 사실상 승인해달라는 구조다. 둘 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라고 포장되지만, 실제 비용과 위험은 한국 쪽에서 먼저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만남을 “한미일 결속 재확인”이라고만 요약해버리면 중요한 질문이 빠진다. 이재명 정부가 국내에 설명해야 하는 건 ‘우리는 미국과 일본을 얼마나 사랑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내주고, 그 대가로 정확히 무엇을 받는가’다.

여기서 한국 정부의 과제가 분명해진다.

미국과의 협력은 더 이상 ‘동맹은 소중하다’는 감정의 언어로 처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확대와 공급망 이전이 어느 업종, 어느 기업, 어느 지역에 어떤 부담을 안기는지 숫자 단위로 국민 앞에 깔아놓을 필요가 있다. ‘동맹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덮기에는 그 액수가 이미 한국 산업 지형 자체를 흔드는 수준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미래 지향’ 같은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는 함께 갈 수 있고 어디부터는 동의할 수 없는지 한국 쪽 기준선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일본의 방위력 증강과 헌법 개정 논의가 한반도 안보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한국이 조건을 먼저 걸고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 내부에서도 방위비 급증과 그에 따른 증세 부담에 대한 반발이 이미 감지되는 만큼, 이 문제를 감정적 반일이냐 무조건적 동맹 충성이냐의 프레임으로 밀어 넣을 게 아니라, 냉정하게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내주고 무엇을 돌려받는가’라는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결국 경주에서 찍힌 미소는 출발점일 뿐이다. 

세 정상은 웃으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지만, 다른 손에는 각자 다른 지도를 거머쥐고 있었다. 트럼프식 ‘동맹의 가격표’, 다카이치식 ‘전쟁 가능한 일본’, 이재명 정부의 ‘국익 우선주의’가 동시에 충돌하고 섞이는 이 구조 자체가 지금 한국 외교의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관리하는 능력이 곧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생존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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