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까지 급등, 임대시장 혼란 우려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목돈을 일정 기간 빌려주고 매달 임대료를 내지 않고 부동산을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제도다. 임대인은 집을 빌려줘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세입자는 월세 없이 살다가 계약기간이 차면 전세금을 돌려받아 내 집을 마련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 보탤 수 있다. 집을 담보로 한 상호채권채무관계이므로 은행 돈 빌리기가 까다로운 여건에서 내 집 마련에 큰 도움이 되고 집 주인 입장에서도 투자금 상환 등에 유리하다. 사금융의 일종이라 해도 민법상 물권의 하나로 엄연히 보호받는 권리다.

오래전부터 상거래와 주거 변화에 따라 관행으로 자리 잡은 전세는 경제성장이 본궤도에 이른 1970년대 이후 수도권 인구 집중이 심화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금도 전세, 혹은 사글세로 출발하는 대부분 가계는 저축 등을 통해 목돈을 쥐게 되면 되돌려받은 전세금과 은행 융자금을 더해 주택을 분양받거나 매입하는 수순을 밟는다. 부모나 주변 도움 없이 신혼부터 자력으로 주택을 장만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전세제도를 내 집 마련을 위해 거쳐야 하는 주거 사다리라 부르고 은행 대출도 비슷한 보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기 변동에 따라 주택가격이 급등락할 경우 전세시장의 변동성은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1980년대 말 이른바 3저 호황과 임금 상승의 여파로 집값과 전세가 큰 폭으로 뛰면서 파장을 불러왔다. 거꾸로 외환위기가 엄습한 1990년대 말에는 전세와 집값이 한꺼번에 폭락해 역전세난이 나타났다. 이사 나가려는 세입자를 위해 집주인이 추가로 돈을 빌려 종전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2020년 임대차 3법이 시행하면서 급등했던 전세가가 2~3년 후 시장 자금 경색으로 다시 떨어지는 부침을 거듭했다. 이와 함께 전세 물량은 줄고 전세 사기의 여파로 월세 비중이 증가하는 전세 소멸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집을 담보로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선순위 임차 보증금을 빼낸 집을 속여 중개업소 등과 공모, 임대인이 보증금을 떼먹는 전세 사기가 횡행하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을 노린 갭투자로 보유 주택을 늘리고 채권 설정 사실 등을 교묘하게 속여 갈취액을 늘렸다. 

연쇄 갭투자 차단, 거래 순기능 살려야  

다만 전세 사기는 손바뀜이 비교적 안전하게 이어지고 있는 서울의 기존 임대 시장이 아니라 수도권 신축 아파트와 빌라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 임대주택과 외곽 신축을 가리지 않고 전세보증보험 요건을 강화하고 전세를 주택가격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판단해 규제를 집중했다. 정부는 6·27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을 6억원 이하로 규제하고 10·15 대책에서 서울시 전역과 경기도 12곳을 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대출 한도를 더 조이면서 전세를 끼고 거래하는 갭투자를 전면 금지해 실거주를 의무화했다. 집값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시장의 수요를 외면하고 정부가 앞장서 전세시장 옥죄기에 나선 셈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세 사기와 임차 수요자의 선호 변화 등에 따라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화가 실거주 의무화와 대출 억제 등 정책에 따른 시장 왜곡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추세라는 설명으로 들렸다. 하지만 왜곡된 전세 소멸 즉 급격한 월세화가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매우 심각하다. 월세는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늘린다. 2023년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주거비 비율은 자가와 전세 거주 가구에 비해 월세 거주 가구가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월세 거주자가 자산 형성에서 매우 불리하다는 통계다. 임대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중은 2020년 40% 수준에서 지난 9월 65%로 크게 치솟았다. 이미 전세를 추월한 월세 비중은 10·15 대책을 계기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올들어 10월까지 서울의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9.8%에 달했다. 월평균 상승률 10%는 2016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라고 한다. 급격한 월세화는 임대차 3법처럼 시장 전반에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크고 물가안정에도 부작용을 미친다. 

연쇄 갭투자는 주택시장 불안을 자극하고 역전세난이 오면 전세 사기로 이어질 위험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갭투자를 악용하는 사례는 당국이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가려내 차단할 수 있다. 정부는 10·15 대책에서 국무총리 직속으로 부동산 불법행위를 체계적으로 감시 조사할 감독기구를 설치키로 했다. 전세대출도 규제 확대에 중점을 둘 게 아니라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선별 규제를 택해야 한다. 재건축을 포함한 신축 아파트에 대한 거주 의무화는 분양 시장을 살려 공급을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세 거래의 순기능을 살려 시장을 안정시키는 혜안이 요구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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