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에 대한 버블 논란이 국내 시장까지 확산되며 지난 5일 코스피가 장중 6%가 넘는 급락세를 보이면서다. 장중 한 때 3900선까지 내려 앉으며 한국거래소에서는 프로그램 매도 호가 일시 효력정지인 ‘사이드카’도 발동됐다.
당시 패닉셀이 이어지는 듯 보였으나,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에 코스피 지수는 4000선을 방어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단기 급등세를 이어온 만큼 중장기 시계에서의 상승 여력은 여전하다는 일부 시장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 투자자들을 안도하게 만들었지만, 7개월 만에 발동된 사이드카가 경고음은 아니었나 짚어봐야 한다.
투자자들의 열기는 지난 2021년 ‘동학개미운동’ 수준을 넘어서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 등 국내 증시 거래대금은 최근 3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21년 8월 이후 4년 2개월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NXT)의 거래금액을 합하면 40조원을 넘어선다.
유동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인 투자자예탁금과 신용거래융자잔액, 종합자산관리계좌(CMA)잔액 등도 모두 역대급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용거래융자잔액은 25조4000억원을 넘어서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기세를 보이는 등 ‘빚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통상적으로 투자자들의 과열 정도를 가늠할 때 신용거래융자를 투자자예탁금으로 나눈 비율을 본다. 해당 비율이 35% 이상으로 오르는 경우 과열 양상으로 판단하는데, 지난 5일 기준 해당 비율은 29%를 넘어섰다.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최대치를 기록한 2021년 당시 해당 비율은 39%를 넘어서기도 했다.
‘동학개미운동 시즌2’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은 어느때보다 뜨거운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로 투자수요가 주식시장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 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용대출 잔액은 104조7330억원으로, 한 달 만에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0%가 넘게 급증한 금액이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오히려 위축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 610조6461억원으로, 전달 대비 0.3%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단순 증가액은 주담대가 더 크지만, 증가율은 신용대출이 약 3배 수준으로 높았다.
정부의 의도대로 부동산으로 가야하는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는 모습이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존재하지만, 투자 없이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가난해진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2.4% 오른 117.42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체감 물가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2%대 예금금리를 제공하는 안정적 재테크 수단만으론 사실상 자산 증식은 커녕 감소하게 되는 셈이다.
최근 급등한 부동산 가격도 ‘뭐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금액은 맞벌이 중위소득 맞벌이 부부가 10년을 모아도 겨우 살 수 있는 수준까지 급격하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최근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라고 한 발언은 투자자들의 ‘빚투’ 등 시장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닌, 빚까지 내가며 투자해야한다는 심리를 조성하는 구조에 있다.
주택 가격은 소득 상승 속도를 앞지른지 한참이다. 물가와 부동산 등 핵심 자산 가격이 빠르게 오를수록 ‘늦으면 영영 기회는 없다’는 불안감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지금의 상승장이 버블일 수 있다는 우려에도, 리스크를 감내하고 매수 버튼을 누른다.
증시에 투자하는 것과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해야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과열 심리를 만드는 배경에 있는 주거 안정과 노동 구조 등 요인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현재 시점의 ‘빚투’는 과거 투기적 성격이 아닌 뒤처질까 두려운 개인들의 심리가 반영된 거울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