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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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들이 걍력하게 추진했던 규제 완화를 현 정부가 다시 들고 나선 것은 과거 정부의 규제 완화 시책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는 각각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을 뽑겠다면서 강력한 규제 철폐를 약속했고 직전 윤석열 정부도 ‘모래주머니’ 제거를 줄기차게 외쳤다. 그러나 규제가 완화되기는커녕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가 더 많아졌다. 특히 윤 정부 때는 205개 개선 과제가 발굴됐으나 여소야대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것은 13%에 불과했다.
이는 규제 완화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서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은 냉소적인 반응부터 보인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한국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뀌면 94개의 규제가 추가되고, 대기업이 되면 329개로 불어난다”고 말했다. 한국은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벌칙을 주는 규제 왕국이란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총 414개 법률에 경제형벌 규정이 무려 5886개나 나열돼 있다. 게다가 법보다 행정 규제가 더 무섭다는 말이 나돈지 오래다. 심지어 당초 허가제로 되어 있던 것을 신고제로 바꾸어도 공무원이 신고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신고를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신고를 하면 무조건 받아주어야 한다는 제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은 최근 들어 드론과 로봇 등 첨단 신산업과 신기술에서 약진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조잡한 저가 공산품을 만들어 팔고 ‘짝퉁 공화국’이란 오명까지 받아온 중국의 이같은 약진 이면에는 ‘탈규제’라는 대원칙이 있다. 개인신상 정보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얼굴 인식 AI 기술을 발전시켰고 하늘을 맘껏 활용하라고 허용하면서 드론 산업을 키웠다. 지금도 베이징 인근 개발특구 등지에서는 900여 대의 자율주행 택시가 달리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첵에 맞서 트럼프의 콧대를 꺾은 것도 미국이 환경규제에 매달릴 때 ‘더러운 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엔 이런 중국이 그저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과거 ‘타다’는 택시업계의 극렬한 반대로 주저앉았고 법률서비스 온라인 플랫폼 ‘로톡’은 변호사협회의 반발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격의료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협회와 의사단체, 온라인 부동산 거래 ‘직방’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로봇 배송은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로 충돌을 빚는 등 혁신 플랫폼 사업들이 기득권 단체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K콘텐츠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은 웹보드 규제 등의 족쇄에 묶였고 건강검진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온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인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등 각종 규제에 걸려 데이터 활용이 막히면서 신약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이들 사례는 글로벌 신성장동력 무한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고 있는 이유를 적나나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표만 의식, 숫자가 많은 쪽 편을 들면서 기존 규제를 공고히 하거나 각종 규제를 오히려 양산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태도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아무리 규제 완화를 외친들 공허하게 들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법 개정 등을 밀어붙여 경제 단체들의 반발을 부르는가 하면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 외국 기업들로부터 한국 시장 철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물론 규제 완화가 곧바로 경제 성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만 존재하는 불합리한 ‘갈라파고스 규제’를 찾아내 과감히 쳐내야만 청년세대의 일자리와 국가 경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지면 산업 전체가 고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안 된다’는 말보다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규제 합리화를 통해 미래 산업의 길을 열고 기업과 국민 모두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국가가 앞장서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