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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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전날(13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975년 이전 강제 수용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한 일을 일컫는다.
박정희 정권은 1975년 부랑인 단속을 위해 내무부 훈령 410조를 발령했으며 이에 따라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약 3만8000명을 강제수용했다.
시설에서 발생한 강제노역·폭행·성폭력·실종 등으로 약 650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재판에서의 쟁점은 내무부 훈령 발령 이전에 강제수용된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은 “이 사건 훈령의 발령 및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며 1975년 이전 강제수용 기간도 국가 배상 범위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1975년 이전 단속 및 강제수용에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 측 26명 중 강제수용 기간을 인정받지 못한 5명이 상고했다.
국가도 상고했으나 법무부가 지난 8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상고를 일괄 취하하면서 대법원은 피해자 측 주장에 대해 심리를 해왔다.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 발령 이전부터 강제수용에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부랑아 단속 및 수용 조치를 해왔고, 이러한 기조는 이 사건 훈령 발령으로 이어졌다”며 “피고는 관행적으로 실시되던 부랑아 단속 및 수용조치를 이 사건 훈령 제정을 통해 확대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서울, 부산 등지에서 일제 단속을 시행해 1970년 한 해 동안 단속된 부랑인은 5200명에 달하며 귀가 조처된 2956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보호시설에 수용됐다”며 “부산시는 이후에도 1974년까지 여러 차례 부랑인 일제단속을 시행하고, 그와 관련된 지침을 마련해 구청 등에 하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에 비춰 보면 1975년 이전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것은 피고의 부랑아 정책과 그 집행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훈령 발령 이전 있었던 단속과 강제수용에 관해 위법한 국가작용이 성립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대법원판결 이후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이 국가에 의해 인권침해를 겪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피해가 일부 회복되는 계기가 됐다”며 “위자료 산정 기준이 되는 강제수용 기간 인정 범위 기준을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한 위자료 재산정과 관련해서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5명에 대한 기간을 포함해 위자료를 재산정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1심에서 수용기간 1년당 약 8000만원을 기준으로 산정한 바 있으며 환송심에서도 이 기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