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양양으로 여행을 떠날때 8살 포메라니안 달구는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온지 이틀이 지나 밤에 잘 때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이 어쩐지 불편해보였다. 낮에 가을 들판을 걷게 한답시고 좀 무리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엔 헐떡거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걸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추석이라 대부분의 병원은 문을 닫아 그저 괜찮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지나쳤고 연휴가 끝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동네 동물병원이 추천한 서울의 한 2차병원이었다. 전화를 통해 전해진 아내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가라앉아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불길한 예감 그대로였다. 달구의 간에 악성종양이 생겼고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노견이 아니라 수술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세 시간가량의 수술 끝에 종양의 대부분을 절개했지만 핏줄이 지나가는 곳의 종양은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했다. 의사는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니 안정을 찾은 후 새로운 치료법을 쓸지 그도 아니면 삶의 질을 생각해서 항암치료를 멈추고 간혹 찾아온다는 자연 치유의 기적을 바랄지 이후에 결정하자고 했다. 의사는 모든 것은 가족의 결정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포가 깔린 작은 입원실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달구는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그제서야 걷다가 물끄러미 주인을 쳐다보며 안아주길 기다렸던 달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달구는 말을 못해 자신의 처지를 주인에게 잘 전하지 못했다. 병균이 간으로 스며들고 있는 지경이었는데도 말이다. 달구는 긁거나 멈춰서서 자신의 처지를 알렸는데 주인은 행동으로 전한 강아지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탓이나 했을 뿐이다. 오히려 잊고 있었다. 강아지는 말을 못해서 몸으로 말을 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말이 있어 자신의 마음을 손쉽게 전한다. 누군가의 희로애락은 기쁘다고, 늙었다고, 사랑한다고, 즐겁다는 말로 상대에게 전달되고 교감된다. 견해와 입장도 마찬가지다. 주고받는 말이 세상을 움직인다. 말이 씨가 되느니,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느니,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느니 하는 말들은 말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테다.

하지만 온갖 미디어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위정자들 말은 얼마나 거칠고 위선적이고 무책임한가. 국감장이나 재판정을 잠시 지켜보라. 허위와 거짓 혹은 대립과 적개로 가득 찬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과오를 숨겨 안위를 유지하려는 후안무치의 거짓말이다. 위증의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데다 내 편의 점수를 따야 다음이 기약되니 삿대질과 집단 퇴장마저 일상이다.

진위를 가려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들의 말이 아니다. 행동이다. 누구든 그의 행적을 살펴라. 행동은 말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공자도 군자는 말하는 데 있어서는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실행해야 한다(君子 欲訥於言而敏於行)고 했다. 기업가라고 다를 것인가. 

최근 유명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노동자의 과로사 의혹이 터졌다.

처음 회사 측의 석연치 않은 입장 표명이 더 큰 문제로 번졌다. 최근 4년간 산재 사고가 60건이 넘었던 만큼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핑계로 가득 찬 반성문 말고 구체적 약속과 조치의 실천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라.

개인 간의 관계도 그렇다. 심성은 곱지만 허풍이 심한 친구에게 우정을 기대할 수 없고 명석한 머리를 가졌지만 냉소적인 말투를 가진 파트너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했는지로 판단해라. 할 말은 참고할 일을 해내는 사람이 쓸만한 이유도 그것이다.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약력
현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전 농심기획 대표이사
전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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