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공간 확대가 역효과 키울 우려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창경궁 남쪽으로 종로 사이에 터를 잡은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건축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저명한 건축가들이 종묘를 ‘동양의 파르테논’으로 칭하며 장중함과 단순미에 경탄했다. 특히 가로 109m, 세로 69m의 넓은 월대 위에 지은 정전은 20여개 기둥 위에 이어지는 맞배지붕으로 펼쳐져 전통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작가 배병우는 종묘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 세계에 알렸다.
 
서울시가 종묘에서 종로를 건너 170m 가량 떨어진 세운 4구역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종묘 경관보존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옆 노후 건물을 철거한 4구역에 공원을 지어 남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확보하고 높이 142m 최고 35층까지 초고층 건물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고도 제한을 종묘 쪽은 현행 55m에서 99m, 청계천 쪽은 72m에서 142m로 풀기로 했다. 2009년 서울시 세운상가 재개발에 제동을 걸었던 국가유산청은 2023년 서울시 조례 개정 과정에서도 협의가 없었다고 반발, 대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6일 서울시 승소를 확정했다.
 
서울시는 쾌적한 공원 녹지를 만들고 글로벌 유망 기업을 유치하려면 초고층 빌딩을 허용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유산심의위원회가 제시한 현행 고도 제한으로는 공사 비용을 대기 어려울뿐더러 건물이 밀집하게 만들어 오히려 경관을 해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초고층 빌딩이 남쪽에 들어설 경우 종묘의 경관과 공간 질서를 저해하고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와의 약속을 깨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인근 지역 경관에 악영향을 미치는 고층 건물 인허가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말한다.
 
세운 재개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여러 차례 나왔던 공방이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현장 방문은 논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 총리는 지난 10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허민 국가유산청장 등과 함께 종묘를 직접 둘러보고 “종묘 바로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의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말했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세운 4구역 사업은 오히려 주변 녹지공간을 시원하게 넓혀 종묘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높여 더 많은 분이 찾게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를 놓고 공개토론을 하자고 김 총리에게 제안했다. 김 총리가 끼어들어 시끄러운 정치권 공방에 세계문화유산까지 쟁점으로 추가한 행보였다.
 
국가유산청은 이어 문화유산위원회 분과위원회를 열고 종묘 일대 19만4000㎡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기로 의결, 후속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국가유산청이 지정을 예고한지 1년여만이다. 서울시가 세운 4구역 계획 변경을 고시하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도록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영향평가를 서울시에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세계유산지구의 필수 구성 요소인 완충구역은 여전히 설정이 안 된 상태여서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도심과 역사 어우러진 경관’ 모색을
 
세계유산지구와 완충구역 설정은 다른 곳 세계문화유산과의 형평을 맞춰야 실효를 볼 수 있는 민감한 과제다. 국가유산청은 종묘 외에도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등 10개 세계유산에 지구 지정을 예고하고 관계 부처와 주민 의견 수렴을 추진하고 있다. 또 조선왕릉을 비롯해 아직 지구 지정을 예고하지 않은 세계유산이 서울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서울 도심 테헤란로 인근 이른바 ‘금싸라기땅’에 자리한 선정릉은 주변에 고층 건물이 몰려 있다. 왕릉 앞에 고층 건물 건설을 허용했고 북쪽 담장 너머에서는 불과 편도 1차선 도로 폭을 경계로 호텔 등 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이 세계문화유산 보호를 내세워 지구 지정을 확대할 경우 어디까지 완충구역을 설정할 것인지 무척 고심해야 할 지역이다.
 
주민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유산 보호구역 설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그때그때 고무줄 잣대 식으로 편의에 따라 할 수도 없다. 왕릉 바로 뒤에 고층 호텔을 허용하면서 종묘 앞 170m 떨어진 곳까지 엄격한 제한을 가하면 주민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문화유산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형평에 맞고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배 사진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심 한가운데 경복궁과 종묘, 창덕궁 등 거대한 역사 공간이 숨 쉬는 서울 독특한 구조를 ‘조망’하는 것도 자랑할 만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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