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노동자 38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12년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냉동 창고 사고 직후 또 다시 일어난 비극으로,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유해 위험 방지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이번 이천 물류창고 공사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 및 확인 사항’에는 시공사 건우와 발주사 한익스프레스가 세차례 ‘화재위험(발생) 주의’를 받았다”면서 “이 공사는 안전성 관련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에서 위험 수준이 가장 높은 ‘1등급’”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국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이를 무시했고, 대형참사는 또 다시 발생했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 등은 현재 파악중에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는 과거 사건과 비슷하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사용했다.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붙으면 유독물질을 내뿜는 스티로폼이나 우레탄이 여전히 단열재로 쓰였다. 이는 유리섬유 단열재보다 값이 싸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한다. 이런 구조는 12년 전의 비극을 다시 만들었다.
공사현장의 대형 인명피해 이유로 건설업계의 하도급 문제도 거론된다. 원청이 하청을 두고 다시 재하청이 반복되는 건설업계는 전체적인 구조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하청이 연결되다 보니 숙련공보다는 비숙련 노동자들이 투입돼 사고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이나 상위 하청업체는 낮은 단계의 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업무상 직무에서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장치들을 이용한다.
이 같은 이유로 이번 이천 물류창고 사고가 법과 제도의 미흡에 의한 살인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21대 국회가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을 비롯해 유가족,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고 직후 재난제도대비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번 사고처럼 대형 화재 가능성이 높은 마무리 공정 상황에 특화한 맞춤형 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며 "위험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여 유사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부처들이 협의하여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고 보고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총선으로 힘을 얻은 여당과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대통령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 같은 대형참사를 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하루 빨리 현실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