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가습기 재조사 "무의미 했다"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오혁진 기자
▲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오혁진 기자
투데이코리아=오혁진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피해자는 늘고 있다. 가해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은 10명이 넘는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하면서 단 두 명인 공판 담당 검사들과 전쟁을 치르며 가벼운 형을 선고 받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기업뿐만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당시 사태를 조사했던 공정거래위원회와 환경부도 공범이라는 주장이다.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성분분석 無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18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분담금 산정을 담당한 환경부 현직 공무원 4명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특히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성분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지원해야할 재정으로 사용되는 사업자 분담금 부과또는 면제 사업자를 선정한다. 문제는 면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기업들이 선정됐다. 

사참위에 따르면 환경부는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을 판매한 사업자를 분담금 면제사업자로 선정했다. 

환경부 산하 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조사 과정에서 A사 대표는 자사 제품에 유독물질인 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NaDCC)가 50% 포함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환경부 현장조사 문서에는 A사 제품에 유독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기재된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지난 2014년 가습기살균제 주무부처로 선정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성분분석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참위는 환경부가 현장조사와 피해자 제출을 통해 11개 종류의 가습기살균제 25개 제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성분분석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하기관 국립환경과학원과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가습기살균제 성분분석 결과 역시 반영하지 않았다.

황전원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지원소위원회 위원장은 "환경부가 3가지 분담금 면제조건 파악을 위한 조사를 시행할 때 면제사업자의 사업장에서 직접 현장 조사를 한 경우는 1건도 없었다"며 "주로 사업자 진술에 의존했기 때문에 일어난 부실 조사로 보인다"고 밝혔다.

공정위, 무의미한 재조사?

SK케미칼과 애경 전·현직 임원들은 재판에 넘겨져 법적인 처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은 대부분 징계를 받지 않거나 검찰 조사를 받지도 않았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1월부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고발인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국장급)은 지난해 6월 25일 김 실장을 포함한 일부 공정위 관계자들을 고발했다. 고발한지 7개월만인 지난 1월 21일 수사가 게시됐고,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담당 배상윤 검사)는 유 전 국장에 대한 고소인 진술 조서 작성을 시작했다.

문제는 조사개시부터 담당 검사가 김방글 검사로 바뀌었고, 5개월 지난 현재까지도 100페이지에 달하는 고소인 진술조서의 열람 수정 단계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인사로 인해 조사가 늦어졌고 고발인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전 국장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 김 실장을 포함한 공정위 관계자 17명을 직권남용·범인은닉도피·공공기록물 관리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정위가 SK케미칼과 애경의 표시광고법 위반 신고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 피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정위가 SK와 애경에서 받은 자료들을 은폐했다. 공정위도 공범이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공정위원장 시절 2016년 8월 ‘심의종결’ 처리됐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2017년 9월 15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가 처분시효가 도과된 것을 알면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SK케미칼, 애경 등에게 면죄부를 주었다”고 규탄했다.

공정위는 피해자들이 재조사를 촉구하자 뒤늦게 조사에 나서 지난 2018년 2월 SK케미칼 전직 대표를 포함한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검찰은 공소시효가 도과되어 처벌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유선주 전 국장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김 실장이 당시 처분시효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것을 알고도 법대로 조사하지 않고 무용한 처분을 했다고 주장한다.

유 전 국장은 2016년 심의종결과 관련해 "핵심 공익침해행위인 허위광고와 안전성 실험자료를 신속하게 법대로 조사하면 처분시효와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고, 처분, 처벌할 수 있다고 진정하고, 핵심 공익침해행위 내용과 증거조사 방법, 처분할 수 있는 법리를 제시한 ‘인체무해 허위광고 검토서’ 서면(16페이지)을 작성해서 제공했는데, 전 정권은 물론이고 현 정권의 김상조 전 위원장 역시 묵살했고, 진실을 은폐한 무용한 처분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애경, 이마트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대법원에서 처분시효가 지난 위법한 처분이라는 이유로 패소 확정되었다.

검찰은 애경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고 로비 행위를 한 국회 보좌관 출신 브로커를 구속하고, 환경부 서기관이 SK케미칼에 기밀 자료 건네는 등의 행위를 포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독 공정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 인사와 타 사건들을 수사하느라 조사나 수사 등을 하지 못해왔다는 것은 아주 좋은 변명거리”라며 “그런 일들이 있기도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 같은 경우는 진상규명이 빨리 돼야하는 사건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정위를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내기도 했다. 말로만 도와주겠다고 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정보와 권리구제 등에 대해선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너나우리 대표 이은영씨는 공정위를 상대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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