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포장, 명확한 세부 기준 없어 
친환경은 불편 동반한 문제… 충분한 소통 이뤄져야

▲편은지 기자.
▲편은지 기자.
정부가 친환경 욕심에 또 과속을 하다 쏟아지는 돌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지난 3주간 여론을 뜨겁게 달군 ‘재포장 금지법’ 때문이다.
 
환경부는 카페 내 플라스틱 컵 금지,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폐지 등에 이어 지난달 18일 ‘재포장금지’에 관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재포장금지법은 과대포장 시 생겨나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환경부가 재포장을 설명하며 예시로 들었던 판촉을 위한 ‘묶음 할인 상품’을 금지시킨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묶음 할인 상품은 유통업체 뿐 아니라 제조업체에서도 판촉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예를 들어 라면 5개묶음에 낱개 한봉지를 테이프로 감싸 총 6개를 5개 가격에 판매하는,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이 이에 해당한다. 하이트진로 맥주 6팩, 신라면 용기 1박스 등의 묶음 상품도 금지됐다. 환경부의 파격적인 가이드라인은 2주 뒤인 7월 1일 시행 예정이었다.
 
이에 유통업계와 소비자들은 정부가 마케팅 방식에까지 관여한다며 비판의 목소릴 높였다. 또 어떤 형태의 포장이 ‘재포장’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론이 들끓자 환경부는 “과대포장을 줄이려는 것이지 가격 할인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라며 해명하고 나섰지만, 결국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내년 1월로 해당 가이드라인을 유예하기로 했다. 환경부 역시 세부 규정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번 환경부의 친환경 규제는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한 자율포장대 폐지와 꽤 많이 닮아있다. 당시 장바구니 사용을 독려하자는 취지에서 갑작스레 자율포장대의 종이박스를 없애겠다는 환경부의 규제는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종이박스의 대체재가 장바구니일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환경부는 결국 “대형마트의 자율에 맡기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대형마트들은 종이박스만 남겨둔 채 환경문제에 주범이 되는 노끈과 테이프만 철수하고 종이박스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재포장금지법도 마찬가지다. 관련업계와 소비자들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규제를 선언하고, 거센 반대가 이어지자 내년 1월까지 유예하겠다며 급하게 발을 뺐다.  오락가락,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환경부의 입장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업계와 소비자를 간 본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는 지난 3-4년에 걸쳐 친환경에 대한 규제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물론 친환경이 전 세계적인 문제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높아진 만큼, '친환경' 자체를 문제 삼는 시선은 없다. 문제는 정부가 규제를 내놓기 전 제대로 된 검토를 했는지, 당장 업계에서 시행할 수 있는 내용인지,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 적절한지에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플라스틱과 과대포장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됐던 이슈다. 최근 배달음식 등이 일상화되면서 일회용품에 관한 문제는 더 커졌다. 실제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77.4%가 ‘제품 구매 시 플라스틱 포장이 과도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부도 좋은 취지에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을 터다.
 
다만 바뀌는 사안이 있다면 이를 충분히 이해시키는 것도 결국 정부의 몫이다. 가이드라인 내 설명과 예시가 적절했다면, 유통업계는 물론 제조업계에서 관행처럼 여겨지던 묶음 할인 상품과 관련해 조금 더 많은 사전조사가 이루어졌다면 이번과 같은 ‘급한불 끄기’ 식의 해명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재포장 금지법 시기를 내년 1월로 미룬 만큼, 환경부도 세부적인 지침이 부족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친환경’을 위한 새로운 규제는 항상 불편과 비판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재포장금지법이 훗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한 '착한 규제'로 남으려면, 소비자를 비롯한 유통사, 제조사, 업계 전문가와의 소통이 더욱 탄탄히 밑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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