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권자가 오류에 따른 손실 책임져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내년 문재인 대통령 퇴임과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정책들이 거론된다. 우선 국회 의석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우위가 여전하므로 정치권의 이해에 민감한 정치·사회 분야보다 경제 분야에서 정책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정책은 국민 생활에 미치는 범위가 넓고 국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새 정부가 앞장서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특히 지난 4년간 실정이 가장 자주 거론된 분야가 경제였다는 점에서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정책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소득주도성장은 현 정부가 맨 먼저 내세운 간판격 경제정책이지만 도입 이후 고용과 소득 등 지표가 거꾸로 악화하면서 시장에서 실패가 입증됐다. 도입에 앞장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등이 물러나면서 사실상 이미 폐기된 정책으로 꼽힌다.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기업 부담이 크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도입부터 논란이 잦았다. 하지만 고용 복지와 직결되는 정책이라서 당장 효과에 따라 존폐를 거론하기는 어렵고 보완을 거듭하는 선에서 후속대책이 나올 전망이다.
 
내년 선거에 따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폐기 여부가 논의될 사안은 국민 생활과 경제 전반에 부담을 주고 여론 반발이 거센 탈(脫)원전 정책이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선언한 탈원전 정책은 그동안 숱한 논란과 부작용을 낳았다. 이 정책은 원전 사고의 참혹한 파괴력과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에서 18%로 낮추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문 정부는 이후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한울 3, 4호기를 보류했으며 삼척의 대진 1, 2호기와 영덕의 천지 1, 2호기 사업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제어력을 확보한 국내 원전기술을 감안할 때 탈원전 정책은 과도한 공포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탄소배출량 증가, 대정전(Blackout) 위험, 환경파괴 등 부작용이 크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학계 전문가들은 물론 경제계와 시민단체, 학생들의 반대가 줄을 이어 주요 여론조사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년간 원전에 비해 발전단가가 훨씬 높은 LNG발전과 태양광·풍력발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전력과 계열사들의 부채도 급증했다. 원전 7기의 사업중단과 보류 등 조치로 인한 손실은 1조4000억원이 넘고 탈원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액이 9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 원전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기술진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후진 양성에도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정부는 당초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으나 탈원전 손실이 누적되자 최근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고쳐 전기료의 일정분으로 조성되는 전력기금을 동원, 한국수력원자력의 손실을 메워주기로 했다. 또 전기요금 개편에 따라 7월부터 월 20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 중 910만가구의 전기료가 월 2000원씩 오른다. 전기차 충전 요금도 오른다. 탈원전으로 전기 생산비가 늘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탈원전은 문 정부가 선언한 탄소중립 실현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미국 등과 손잡고 해외 원전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구상과도 상충된다. 국내에서는 위험한 산업이라고 건설을 중단시킨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전략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비탄소의 고품질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전 기반을 확보해야 친환경까지 요구되는 4차 산업시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명분과 실리에서 모두 탈원전을 지속할 근거가 빈약하고 여론도 등을 돌린 지 오래다. 문 정부 퇴임 이후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거의 없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야권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탈원전 폐기를 즉시 단행할 태세이고 여당 후보가 승리한다 해도 전 정부의 과오를 시정하고 차별화를 통해 국정을 새롭게 한다는 측면에서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원전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 정부에서 원전산업이 입은 타격과 국론분열,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탈원전의 철회나 폐기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감사원은 이미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등 의혹을 제기했다. 대전지검은 백운규 전 산업통산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 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직권남용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김오수 신임 검찰총장의 성향으로 미뤄 대전지검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김 총장이 기소를 막는다 해도 탈원전을 그냥 덮어두고 가기는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수사에 다른 변수가 생길 여지가 충분하고 한전 등 관련 회사 주주들이 발전 중단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가동 중단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과 정책 결정에 관여한 책임자,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모두 배임이나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근거가 빈약하고 명분 없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오판과 정략을 막을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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