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피해 남긴 에너지 정책의 반면교사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탈원전 정책은 사실상 끝장이 났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원자력 발전 비중을 대폭 감축하겠다는 정책을 강행해왔으나 막대한 손실과 비용, 국민반발에 막혀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국제적 환경과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탄소배출을 줄일 현실적 대안으로 원전 필요성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증시에서는 이미 원전 대장주로 통하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관련 기업의 주가가 바뀐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그동안 탈원전 정책을 앞장서 지지했던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진도 종전과는 다른 입장으로 바뀌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돼 원전에 숨통을 틔웠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의 정승일 한전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원전비중이 적정하다고 보지만 더 많이 필요하다는 국민 공감대가 있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몇 가지 조건을 달기는 했으나 그동안 탈원전에 후퇴는 없다던 철옹성 같은 입장과는 다른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어찌 보면 문 정부가 말기에 들어서고 탈원전 관련 공직자와 경영진 등이 배임 등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단계로 보인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탈원전 후퇴를 시사하는 발언이 잇달아 나오고 증시 평가도 달라지자 “탈원전 기조는 흔들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080년까지 장기적으로 원전비중을 줄이겠다는 기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수석의 이런 해명도 집권 초기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중단을 내세워 ‘원자력 제로’까지 거론했던 정책 목표와는 차이가 있다. 정책 후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를 꺼려 마지못해 내놓은 궁색한 말돌리기로 들릴 뿐이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관련 피의자로 입건된 박원주 전 산업통산자원부 에너지 실장을 임명한 배경에도 승패가 사실상 갈린 경기를 마무리하려는 인사라는 해석이 따른다.
 
탈원전 정책은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킨 월성 1호기 가동중단부터 신한울 3·4호기 등 건설중단 등으로 파장을 더해 지난 5년을 끌었다. 그사이 탈원전 반대서명은 이미 100만명을 돌파했고 백운규 전 장관을 비롯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과 한수원 경영진이 경제성 평가 조작 등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기업이라던 한전은 적자가 쌓여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원전 대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에 따라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가 마구 늘어나 환경파괴와 효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현 정부가 내세운 탄소중립목표에 맞춰 205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80%로 높이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와 송배전망 보강 등에 대략 1500조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내년 예산 600조원의 2배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전기요금도 120%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탈원전에 따른 전력생산비용 손실을 몇가지 변수를 더해 국회입법조사처가 분석한 결과 30년간 1000조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예시됐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 중국이 국제 원전 시장을 선점하고 미국 프랑스 영국이 기술개발에 투자를 더하는 시기에 우리나라는 기술개발과 투자에 발목을 잡는 우매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공감대나 합리적 근거를 외면한 채 대통령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탈원전을 강행한 결과 막대한 손실을 남기고 정책 폐기가 불가피한 막다른 길목에 몰렸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여야 어느 쪽이 집권한다 해도 탈원전의 몰락은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아직 탈원전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갈수록 말끝이 흐려진다.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려면 탈원전을 재고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탈원전은 결국 국민에게 막대한 비용과 손실을 떠넘기고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전형으로 남을 전망이다. 집권자와 집권세력, 그리고 소수 환경운동가들의 과장된 주장에 동조한 정책이 가공할 실패를 불러와 국민 부담을 키우고 산업생태계를 망가뜨리는 통탄할 사태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이후 경제 분야에서 반면교사로 남은 대표적인 실정으로는 김영삼 정부의 외환위기가 단연 꼽힌다. 고 김영삼 대통령은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소신을 보였으나 금융개방 등 경제정책 운용에 실패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외환위기의 원인과 파장, 재발 방지를 위한 분석은 아직도 연구과제로 이어지고 있다. 문 정부가 탈원전을 선택한 배경과 정책결정 과정, 그 부작용과 파장은 에너지 분야에서 외환위기 못지않은 충격으로 꼽힌다. 여기에 관여한 공직자와 행적, 파장과 폐기 과정에 이르기까지 생몰 기록을 상세히 남겨 후일을 위한 경계로 삼아야 한다. 두 번 다시 집권자의 오판에 의한 터무니 없는 실정이 재발하지 않도록.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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