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내로남불, 자화자찬...말따로 행동따로 暴走정치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장면 1: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국회의사당에서 가진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낭독했다.

“저는 오늘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대한민국은 숱한 좌절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선대들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나라입니다. 또 많은 희생과 헌신을 감내하며 젊은이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했던 나라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겪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 권력행사를 하지 못하게 견제장치를 만들겠습니다.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사드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국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동북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습니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동시에 재벌개혁에도 앞장서겠습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했던 약속들을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화문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2017년 5월 10일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됩니다. 이 길에 함께 해주십시오. 저의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장면 2: 춘풍추상(春風秋霜)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의 준말로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청와대 비서동에 액자로 만들어 나눠준 채근담(菜根譚)의 경구(驚句)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종호 민정수석이 취임 일성으로 각각 이를 언급했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신임검사임관식에서 이 말을 쓰는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좋아하는 글귀다.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추상과 같이 엄격하게 대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공자가 “자신을 많이 책망하고, 남을 적게 책망하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子曰(자왈),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궁자후이박책어인 즉원원의)”. <논어 위령공 제15장>

공자가 이런 말을 남긴 이유는 현실에선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해지기 쉽다. 요즘 유행어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장면 3. 與내부에서 터진 文대통령 반성문 논란
 
청와대 출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3.9 대선 패배 책임을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으로 돌린 채이배 비상대책위원에게 지난 3월 17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책임과 향후 진로를 놓고 친문(親文)과 비문(非文), 친문과 친명(親明·이재명 지사와 가까운 사람들)으로 나뉘어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

채 위원은 지난 3월 16일 비대위 회의에서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인사 실패, 내로남불, 불공정으로 국민 마음을 잃은 것을 반성하고 사과한다”며 “가장 큰 계기는 조국 사태”라고 말했다. 채 비대위원은 같은 날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5년간 ‘나쁜 정치’를 했다”며 “문 대통령이 적어도 퇴임사엔 반성문을 남기고 떠났으면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친문 의원들이 발끈했다. 민주당 내 청와대 출신 의원 15명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선거에 필요할 때는 너도나도 대통령을 찾고, 당이 어려워지면 대통령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 채 위원이 생각하는 ‘좋은 정치’인가”라며 “비대위원 언사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었기 때문에 채 위원의 공식적이고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또 “5년의 국정 운영이 나쁜 정치 한 단어로 규정되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입장문에 참여한 민형배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채이배 망언은 참기 어렵다”며 “이런 말을 제어할 수 없다면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자격 미달이다. 채 위원을 즉각 내보내라”고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채 위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까지 집단적으로 하는 건 좀 섭섭하다”며 “반성과 사과에는 특별한 금기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장면 4: ‘문재인의 5년’ 특별 대담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것과 관련해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후보의 대선패배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데 대해 “억울한 점을 약간, 조금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26일 JTBC에서 방영된 손석희 전 앵커와의 특별대담(‘대담-문재인의 5년’)에서 이같이 말하며 “우리당 후보라고 응원을 할 수도 없었고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치 (대통령 보고) 선거에 졌다고 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잘 모르겠다”고 남 얘기하듯 말했다. 현 정권의 내로남불, 법치·공정의 파괴, 권력사유화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 ‘윤석열 대통령’이란 결과로 나타난 것임에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의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로 여야가 합의했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과 관련,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수완박을 반드시 막겠다’고 발언한데 대해선 “그런 표현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뒤흔들 중대한 사안에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가 입장을 밝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딴지를 걸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비슷한 수준의 나라 중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손 전 앵커가 “받아들이기엔 당혹스럽다”며 “한국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커서 큰 폭으로 올랐을 때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이 컸다”고 하자 “그런 것까지 얘기하면 굉장히 복잡해진다”고 말을 돌렸다.

또 윤석열 전 검찰총장 당시의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족 수사에 대해선 “시점이나 수사방식을 보면 너무나 공교로운 부분들이 많아 목적이나 의도가 포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 사람과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은 마음이 아프다”며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받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되고, 법무부장관에 발탁되고 하는 바람에 그런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공정의 가치나 내로남불 논란, 반으로 쪼개진 국민 갈등에 대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성, 국민들의 상처를 달래는 다독임은 없었다.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2017년 핵 실험이 거듭되면서 한반도에 조성됐던 전쟁 위기를 대화와 외교의 국면으로 전환했다”며 “그 점에서 저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사검증 실패 논란에는 “인원이 얼마 안 되는 청와대 검증이 완전무결할 수 없다. 검증실패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취임 전 스스로 밝혔던 5대 임명 불가 원칙(위장 전입, 논문표절, 세금 탈루,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두고는 “지금 눈높이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라며 “도덕성 검증 쪽에만 너무 매몰돼 정치화되니까 망신주기 청문회가 된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부동산 투기 등으로 촉발된 ‘내로남불’ 논란에는 “저쪽(보수 진영)이 부동산 보유나 투기 등 모든 면에서 더 문제인데 가볍게 넘어가고, 이쪽(진보 진영)의 보다 작은 문제들이 훨씬 부각되는 이중잣대도 문제”라고 억울해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대선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엄격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을 비롯해 심지어 내각책임제 국가들도 대통령이든 총리든 본인이 선수로 나가기도 하고 또는 본인이 선수로 나가지 않는 경우에도 지원유세들은 다 한다”며 “본인이 선수로 나가든 지원유세를 하든 선거는 엄정하고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고, 그게 서로 상충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손 앵커가 ‘대통령이 링에 오르지 못하는 게 룰’이라고 지적하자, 문 대통령은 “저는 별로 그게 룰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손 앵커가 다시 ‘직접 링 위에 올랐다면 결과가 달라졌으리라 보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우선 적극적으로 지지활동을 할 수도 있고, 우리 정부의 성과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대해선 우리가 얼마든지 맞설 수 있다”면서 “모든 나라가 선거를 그런 방식으로 치렀는데 우리만 유독 꽁꽁 묶어놓고 한다”고 했다.

이처럼 자기 진영엔 관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겐 시종일관 박한 평가를 했다. 윤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서는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된다”며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정권 교체기에 ‘3월까지 방 빼라. 5월 10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는 식의 일 추진은 정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자신이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선 “옳은 판단이었다”고 넘어갔다. 윤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북한 선제타격론 등을 언급한 것을 두고는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정도면 몰라도, 국가 지도자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며 “후보 시절 모드와 대통령 모드는 달라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퇴임 전 마지막 기자간담회와 JTBC ‘대담- 문재인의 5년’ 내용을 본 국민은 대부분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지난 5년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였지만 실정(失政)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진솔한 사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유의 유체이탈(幽體離脫) 화법에 무책임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퇴임 특별대담에 이르기까지 몇가지 특징적인 사례를 살펴본 것은 그의 임기가 끝나가는 즈음에 과연 약속은 지켜졌는지, 지난 5년간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김질해보기 위해서다. 이는 정확히 일주일 뒤인 5월 10일,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의 법정엔 시효(時效)가 없다‘는 냉엄한 진리를 직시(直視)하라는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앞으로 새 대통령과 참모를 비롯해 공직자들이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실효적인 방법을 찾아 국리민복(國利民福)에 충실한 국정운영을 해나가는지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