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폭언 당한 횟수 한 달 평균 11.6회·성희롱 1.1회
콜센터연대 곽현희 의장 “언어폭력 노출돼도 사후대처 미비해”
‘폭언 대응 매뉴얼 획일화’ VS ‘모든 업장 적용하기 어려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코리아=박희영 기자 | “우리 엄마가 상담해 드릴 거예요. 우리 엄마 마음 지켜주실 거지요?”
 
언젠가부터 ARS 전화 연결 시, 전화상담사의 인권을 지켜주자는 호소 섞인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근무 중 언어폭력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자 정부가 고안한 방법이다. 이처럼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현직 전화상담원들은 ‘사각지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했다.
 
콜센터노동조합연맹 곽현희 의장은 <투데이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획일화되지 않은 감정노동 매뉴얼’을 문제로 꼽았다. ‘폭언 3회 시 상담 종료’ 같은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 ‘사업장의 내부 사정’이란 명목 하에 입맛대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주를 위해”···성희롱에도 ‘덮어 놓고 쉿’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간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화상담사가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당한 횟수는 한 달 평균 11.6회, 성적 농담 등 성희롱을 당한 횟수는 월평균 1.1회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도입(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이 감소했다는 평가는 30.2%에 그쳤다.
 
곽 의장은 “현장을 보면 70~80% 이상이 여성인데 이 중에는 젊은 친구도 있고 임산부도 있다. 여성 전화상담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위 높은 성희롱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러 상담원을 당황스럽게 만든 뒤 혼란할 틈을 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고자 A 콜센터에서 단기 근무를 한 김모 씨(23)를 만나봤다. 김 씨는 “콜을 받았는데 응답이 없어 몇 번이나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몇 초 후 갑자기 남성의 신음소리가 들려서 무섭고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김 모씨는 “그래도 받은 콜(call)은 쳐내야(끝내야) 하니까 ‘어떤 문의 사항이 있어서 전화를 주셨느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허탈하게 말했다.
 
‘수치심을 억누르면서까지 상담을 진행해야하나’라는 질문에 곽 의장은 “상담원의 수입 구조는 기본금과 성과금으로 합쳐진다. 보통 D부터 S 등급으로 나눠지는데, 업체에 따라 성과금이 30만 원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라며 “기본급이 매우 적다 보니 내가 일을 더 많이, 더 빨리할수록 성과가 오르는 만큼 힘들어도 꾸역꾸역 콜을 채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화상담 노동자들의 월 평균임금(세금공제 전 월평균 총수령액 기준. 각종 상여금 및 현물 등 포함)은 217만 원으로 집계됐다. 당시 전 산업 월평균 임금이 267만 원임을 감안하면, 전 산업 대비 81.2% 수준으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저임금 직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곽 의장은 전화상담원의 경우 매일같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만큼 성희롱과 폭언을 사전에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만큼 사고 발생 후 후속조치라도 잘 이루어져야 하는데, 중간 관리자가 책임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전했다.
 
곽 의장은 “보통 2~3분 내외인 상담 시간이 문제가 생기면 더 길어진다. 이때 관리자인 팀장이나 센터장이 나서서 전화를 끊게 하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하는데,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며 외주로 운영되는 콜센터의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곽 의장은 “폭언이든 성희롱이든 문제가 발생해서 신고하면 윗선에 올라가기도 전에 원청에서 무마시킨다”라며 “문제를 일으킨 업체를 누가 좋아하겠느냐. 작은 오점이라도 있으면 다음에 수주받을 때 안 좋게 보기 때문에 덮어 놓는다”고 밝혔다.
 

피할 수 없는 감시탑, 쏟아지는 폭언에 울면서도 “감사합니다, 고객님!”

외주의 또다른 문제는 바로 ‘권력에 의한 지배구조’가 쉽게 발생하고, 책임이 분산된다는 점이다.
 
전화상담원의 업무 과정은 상사인 관리자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관리자로 불리는 팀장 및 센터장은 전화상담원이 전화를 받고 있는지, 후처리(상담 사항을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 중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라 전화를 얼마나 오래 받고 있는지, 후처리에는 얼마가 소요됐는지, 맡은 콜 수가 어느 정도인지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콜센터 업장은 할당량인 ‘콜 수’ 또는 ‘콜 건’을 처리해야 한다. 미달일 경우 상사의 눈총을 받거나, 퇴근 후에도 남아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B 콜센터에서 근무하던 이모 씨(22)는 “근무 중 고객으로부터 심한 폭언을 들었다. 눈물이 나고 손이 떨려 전화를 끊은 후 심호흡하려고 해도 그 시간 안에 놓치는 콜이 생기면 팀장이 눈치를 줬다”라며 “그러다보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목소리는 밝게 내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전화상담원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센터장, 외주 업체, 공사 등으로 책임이 분산된다. 따라서 노동자가 고객을 상대로 고소에 나서도 선뜻 누구 하나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 현실이다.
 
<투데이코리아> 취재진이 만난 다수의 콜센터 제보자들 또한 평균 6개월이 넘는 근무 기간 동안 실제 고객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한 사례는 단 한 건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C 콜센터에서 인바운드(전화를 받고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로 근무하던 중 성희롱과 폭언을 자주 겪었다는 박모 씨(25)는 “그 당시에는 무척 수치스러웠다”라면서도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었다. 주변에서도 다 그렇게 참으니까, 굳이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곽 의장은 “폐쇄적인 업무 환경이다 보니 용감하게 나서 부당한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 드물다”고 밝혔다.
 

“이제는 노동 존중 시대” 폭언·성희롱 대응 매뉴얼 획일화돼야

고용노동부가 2021년 발표한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객의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해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심리적 안정을 위해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여 피해 장소에서 벗어나도록 하며, 이러한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 고용노동부가 2021년 발표한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 사진=고용노동부
▲ 고용노동부가 2021년 발표한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 사진=고용노동부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상담 진행 중 문제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절차도 존재한다.

다만, 해당 절차는 어디까지나 표준 예시일 뿐, 콜센터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환경에 맞게 보완·변경할 수 있어 모든 업장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권 의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여전히 ‘권고’ 수준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업장을 아우르는 매뉴얼이 더욱 체계적으로 획일화 돼야 하고, 더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콜센터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일반 국민이거나 고객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등 매뉴얼을 획일화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회 이상 폭언 시 전화를 끊도록 하는 부분은 규정하는 게 쉽지 않다”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전화상담원이 겪는 감정노동에 대한 고충은 오래전부터 대두됐지만, 여러 요건이 맞물려 고착된 만큼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곽 의장은 “고객으로부터 ‘앉아서 일하는 주제에 무엇이 힘드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사람들을 데려와 그 자리에 앉혀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고객이 왕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노동을 존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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