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없는 경기도지사 출사표..."박근혜 핵심 TK서 버림 받아"
"'배신의 정치' 낙인이 영향...대구시장 출마 불가능했을 것"

▲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근혜씨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근혜씨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투데이코리아=오혁진 기자 |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 결심을 굳혔다. ‘15년 여의도 정가’ 생활 중 10여년을 대구 동구을에서 지내며 ‘TK 맹주’라 불린 인물이 사실상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 연고가 없는 경기도로 나오면서 정치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중진 중의 중진’인 유승민 전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해온 행보가 현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TK 맹주의 몰락’

유 전 의원은 지난달 말까지 정계 은퇴를 통해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사하던 중 지난달 31일 결심을 굳혔다.

1일 유 전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선 직후 정치를 그만둘 생각을 확고하게 하고 있었다”며 “정치를 23년째 하고 있는데, 사람이 물러날 때도 알아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이유에 대해 “정치를 그만두려고 결심한 사람이 경기지사 자리에 욕심이 뭐가 있겠느냐”며 “국민의힘 입장에서 제일 험지니까 총대를 메고 각오를 하고 뛰어 들었다”고 설명했다.
 
유 전 의원이 경기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는 과거 유 전 의원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유 전 의원은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친박계 핵심으로 편입됐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2012년 총선부터 유 전 의원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는 이상 기류가 형성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와대 얼라들"(2014년 10월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발언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는 '정윤회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배후로 김무성 전 대표와 함께 유 전 의원이 지목된 'K(김무성)-Y(유승민) 메모'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유 전 의원의 행보에 친박계를 중심으로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권에 비협조적인 유승민계 현역 의원들을 쳐내고 '충성스러운 인물'들로 채운다는 복안이었다. 이는 유승민계를 표적으로 한 '공천학살'을 통해 현실화됐다.

유 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힌 것은 '국회법 파동'이 결정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를 천명하는 동시에 유 의원을 콕 집어 "배신의 정치"로 규정했다. 유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계는 공식 회의 자리, 언론 인터뷰 등을 가리지 않고 '유승민 책임론'을 제기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를 마치고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걸어 내려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를 마치고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걸어 내려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 과거의 선택이 만든 험지 출마

유승민 전 의원의 정치 행보 때문인지 정치권과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유 전 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면 경기도지사 출마 외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한 4선 의원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주공산인 지역이고 여의도 정가에서 유승민 의원은 TK 외 지역에서는 성과가 없었다는 식으로 인식이 굳혀져 있다”며 “사실상 유 전 의원에게 경기도지사 출마는 마지막 정치 인생을 걸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도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을 저격한 발언으로 인해 TK에서 인식이 좋지 않다”며 “TK 출신이 TK에서 외면받았으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TK에는 친박 핵심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고 홍준표 의원도 선언을 했다”며 “유승민 의원이 대구시장에 나간다고 하면 당내에서 좋게 보는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민심'을 등에 업은 유영하 변호사가 등장한 만큼 유 전 의원에게 승산이 없다는 설명이다. 

유 전 의원이 경기도가 아닌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연고가 없다 할지언정 당내 인지도와 영향력을 따졌을 때 오세훈 시장에게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사무총장 출신 한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은 친박계와 연관 없는 MB 사람”이라며 “서울 강남권에서 친박계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많기에 유 전 의원이 오 시장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