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성 비위 사건뿐이랴, 어떤 이들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습관에 중독됐다. 사회적 책임과 도덕심이 결여된 행태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를 공익신고자와 기회주의자로 나누어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내부고발자가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행동했다한들, 폄하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가해자는 탐욕에 끌려 목적을 실현했는데 신변을 보호받고, 피해자의 보상심리는 불순하다고 폄하될 수 있을까? 목적 없는 행위는 없다. 다만, 내부고발자가 된 피해자가 하나같이 금전적 보상을 기대했다고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흔히 말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안희정이 불쌍하더만, 솔직히”라며 “미투가 터지는 것이 다 돈을 안 챙겨 주니까 터지는 것 아닌가”라는 입장을 밝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성추행 사건 당사자와 ‘미투 운동’을 폄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 ‘미투 운동’은 지난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사장이었던 안태근의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방법과 실천에 있어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의미가 퇴색되지 말아야 할 역사다. ‘나영이 사건’ 가해자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을 때리는 등 여성인권이 바닥난 한국에서 불이익을 걱정하던 당사자들에게 서 검사의 용기는 도화선으로 작용해 연쇄 폭발한 의미있는 현상이다.
앞서 미국 영화제작자인 하비 웨인슈타인이 여배우를 수년간 성추행한 사건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2017년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로 ‘#MeToo’를 다는 것이 미투 운동의 시초가 됐다. 우리나라는 연예계를 넘어 정치계가 이를 폄하해 피해자를 ‘꽃뱀’으로 일반화했다. 심각한 ‘정치병’에 걸렸다고 진단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투가 정치병에 걸린 순간, 의미 훼손과 함께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에겐 집단이기주의가 작동한다. 이는 최근 성 비위 사건이 발생한 모 기업 직원들로부터 “신고한 거 알려지면 승진 못할게 뻔하다”며 쉬쉬하는 입장을 통해 투영된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너도나도 폭로하던 때와 달리 ‘흔한 사건’으로 치부되어, 수치심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소리없는 고통은 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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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기자
smk3190@todaykorea.co.kr
통합뉴스룸 총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