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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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정 사이비 단체가 대선 국면에서 ‘캐스팅보트’를 자처했던 과거 사례처럼, 사이비 단체의 조직적 결집과 정치권과의 접점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잠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같은 단체들이 물밑에서 움직이며 선거판을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과장이 아닌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다락방이 지닌 폐쇄성, 강한 조직력,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이미 수차례 경험한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게 하고 있다.
다락방은 수년간 청소년 수련원 건립을 명목으로 수백억 원을 모금했지만, 실체 없는 공사, 반복되는 변경 공고, 부실한 회계보고 등은 종교를 내세운 자금 동원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부 성범죄 고발자에 대한 2차 가해, 책임자들의 모르쇠, 피해자를 향한 ‘영적 공격’ 같은 반응은 이 조직이 공적 책임을 회피하고 종교적 신비주의로 모든 것을 은폐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 큰 위험은 이런 구조가 사회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JMS 사건은 이를 상기시킨다. 수십 년간 교주의 성범죄가 이어지는 동안, 현직 경찰이 신도로 활동하며 수사를 무마하고 정보를 유출한 사실은 충격이었다. 공권력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었다.
사이비 종교 단체는 단지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 기관 안으로 스며들며 감시받지 않는 권력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사회적 경계는 필수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아니, 때로는 그 침묵이 묵인으로, 혹은 유착으로 이어진 정황도 보인다.
일부 국회의원은 해당 단체의 행사에 참석했고, 지역 기반 표를 의식해 접촉을 이어왔다는 증언도 있다. 정치인들에게 사이비 단체의 ‘표’는 무시할 수 없는 조직표이자 선거 전략의 일부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철저히 ‘표’에만 있다. 그 표의 이면, 사이비 피해자들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된다.
삶이 무너졌고, 가족이 해체됐으며, 신앙은 협박의 도구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침묵했고, 누군가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 안에서 울었던 이들의 눈물은 단 한 표의 가치만큼도 고려되지 않았다.
표가 만들어지는 방식 또한 문제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가 아니라, 종교적 권위 아래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른 조직적 투표가 이뤄진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종교가 특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신도를 동원하고, 그 집단적 선택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종교 활동이 아닌 정치 개입이다.
이처럼 사이비 단체들이 선거 때마다 조용히 수면 아래로 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론의 비판을 피해, 법의 감시를 비껴가며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방식은 ‘조용한 표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침식하는 가장 은밀하고도 치명적인 균열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이비 종교 단체로 인한 직간접 피해자는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이 문제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그 구조 안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신앙의 탈을 쓴 착취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모두 ‘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교리를 악용해 권력을 휘두른 수뇌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 아래서 복종을 강요당하고, 삶과 사고를 조작당해온 평범한 신도들은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 사회는 이들을 비판이 아닌 구조와 회복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은 표를 위해 움직이고, 종교는 존립을 위해 신도를 결집시킨다. 이 둘이 손을 잡았을 때, 그 만남이 공익이 아닌 거래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접점에 주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