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공개도, 전자발찌도 ‘제외’, 성인지 감수성 제로

▲ 여성의당 당원들과 참석자들이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여성의당 당원들과 참석자들이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코리아=한지은 기자 | 재판부가 가해범죄에 비해 턱 없이 낮은 판결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성범죄, 특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은 우리 사회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었다. 미국 송환을 불허한 이번 재판부도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할 정도로 실효적인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해당 범죄 법정형이 미국보다 현저히 가볍고, 아동·청소년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약한 상태에서 형사사법제도를 운용해왔다"며 기존 수사와 재판의 성인지 감수성 부재를 인정했다.
 
손정우는 현재 전자발찌나 개인 신상 공개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자발찌를 부착하거나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하기 위해선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여야 하는데 손씨는 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직접적인 성범죄보다 가볍게 다룬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전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관련법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형이 낮다기보다는 실제 법원에서 판결로 내려지는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경향이 있다”며 “쉽게 말해, 큰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결혼 여부 등으로 형량을 낮게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성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들의 호기심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여실히 반영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특히 손정우의 1,2심 판결에 대해 “1,2심 판결을 보면 과연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손정우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성범죄는 그 피해가 전 세계를 범위로 무제한 확대될 수 있고, 언제든지 재유포 되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완벽한 피해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더불어 “피해자들이 직접 느끼는 두려움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1,2심 재판부가 피해의 정도를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재판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결국 가해자에 대한 작량감경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또한 전 변호사는 “가해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 손정우의 부친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손정우의 부친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손씨 ‘자금세탁 혐의‘만 ’경찰‘서 수사
 
손씨에 대한 추가 수사는 자금세탁 및 범죄수익 은닉 혐의로 경찰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손씨의 아버지는 지난 5월 손씨를 범죄수익은닉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했다.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제3조(범죄수익등의 은닉 및 가장)에선 ‘특정범죄를 조장하거나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으로 가장할 목적으로 범죄수익등을 은닉한 자’ 등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5년 이상 무기징역’인 조항에서도 1년 6개월로 선처 받은 손씨에게 죄질에 비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진 않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손정우의 미국 송환 이전에 현 사법체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에 국민들이 분노한 까닭은 손정우가 가해 사실에 비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인도요청사실을 2019년 4월 19일 외교부에 관련 서류가 도착해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 해 5월 손정우는 1년 6개월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현재 법무부는 "미국이 손씨에 대해 새로운 범죄사실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해오는 경우 적극 협력할 방침"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입법부 또한 움직였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 7일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고등법원 단심제로 열리는 현행 범죄인 인도법을 대법원 재항고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가 이와 같은 움직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전 변호사는 “우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 범죄의 양상과 피해의 규모가 일반 범죄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 특징에 걸맞은 양형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마련되지 않아 문제였다”며 양형기준의 강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최근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긴 했지만 미성년자 온라인 그루밍, 성착취물 광고 등 일부 범죄는 여전히 입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속히 후속법안 통과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며 사각지대에 놓인 성범죄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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