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사회 속 자리한 디지털 성범죄

▲ 한지은 기자
▲ 한지은 기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다. 나치의 심복이자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는 아이히만이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매우 악한 사람일 것이라 여겼으나 아이히만은 평범했다. 아이히만의 정신검진 결과는 매우 정상이었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사회구조와 요구에 순응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이 무뎌진 것이다. 이를 지칭하는 개념이 ‘악의 평범성’이다.
 
‘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어디나 존재한다. 손정우가 결국 1년 6개월의 형량을 받고 풀려났다. 미국 송환이 거부되고, 현재 자금세탁의 혐의로만 조사 중이다. 이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믿을 수 없는 사법부의 처벌이 아닌 직접 처벌을 내리겠다며 디지털 교도소가 생겼다. ‘사법부도 공범이다’라는 문장은 우리 사회가 용인한 ‘악의 평범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 사회는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를 지나쳤다. 우리나라의 낮은 성범죄 처벌 수위는 끊임없이 회자됐다. 하지만 직접적인 범죄가 아니란 이유로,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낮은 처벌 대상이 됐다.
 
1999년 시작된 소라넷이 2016년 폐쇄됐다. 소라넷은 폐쇄되는 순간까지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했다, 하지만 처벌받은 이는 소라넷 운영자뿐이었다. 지난 3월,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와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하영 성매매 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100만 회원을 자랑했던 소라넷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운영자 단 1명 뿐이다. 처벌받지 못한 소라넷의 후예들이 박사들이 되었다”라고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았던 과거에 불법 촬영물은 ‘몰카’, ‘음란물’이라고 통칭됐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들에게 ‘왜 그랬냐’며 더욱 주눅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2020년 일어난 ‘N번방 성착취물 유포’사건 피해자들에게도 몇몇 이들은 ‘왜 일탈계를 했냐’ 되물었고, 생후 6개월의 아이까지 범행대상으로 삼은 손정우에겐 1년6개월의 형량이 내려졌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 특정과 유포를 막기 힘들다. 사회가 막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끊임없이 회자될 뿐이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포르노 사이트엔 해당 범죄의 영상을 찾는 검색 키워드가 우후죽순 늘어났다. 또 가해자들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틀에 박힌 반성문을 제출하고 우리 사법부는 이를 용인해왔다.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성범죄는 진화하고 잔인해지고 있다.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회자되며 신상의 노출마저 염려한다. 가해자들의 처벌을 담당하는 곳은 사법부이며 사회는 이들을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도 불분명하고 그 동안의 판례들은 성장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따라가기엔 멀었다.
 
우리는 가해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선 아니 된다. 특히 범죄의 수법이 진화할수록 재발방지대책도 마련돼야한다. 증가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악의 평범성에 갇힌 공범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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