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라고 불리는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대한 정기국회 심의를 앞두고 경제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여야 지도부가 법안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정경제 3법이 일사천리로 통과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국회 당시 처리가 불발됐던 공정경제 3법이 이번 21대 국회 들어 다시 부활했다. 사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공정경제 3법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안처럼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들의 고질적 악습이 고쳐진다면 법안 처리를 지연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경제계는 공정경제 3법에 포함된 일부 독소조항들이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급진적이고 과격한 규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경제계가 공정경제 3법을 ‘기업 옥죄기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기에 야당 지도부마저 공정경제 3법 찬성 의사를 밝히며 경제계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여당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야당이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펼쳐진 것이다.
 
175석이라는 거대 여당 힘만으로도 법안 처리에 문제가 없지만 최후의 보루인 야당마저 제동을 걸 의사가 없어 보였다. 이 흐름이 이어질 경우 공정경제 3법이 원안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는 건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나왔다.
 
급기야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우리 경제계 대표 단체 수장들이 연이어 국회로 향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간 공동 성명서나 건의를 통해 입장을 밝혀 온 이들이 직접 국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재계나 경제단체들이 잇달아 국회를 찾은 건 극히 이례적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2일 국회서 이뤄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회동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김 위원장은 회동이 끝난 후 “걱정하지 말라”고 박 회장에게 말했다며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박 회장은 “기업들이 매일 생사 절벽에서 발버둥치고 있다”며 호소했지만, 이 대표는 “경제계의 의견을 듣겠다”고만 했다. 박 회장은 회동이 끝난 후 나와 “여야가 기업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으니 진일보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제계 호소 끝에 급발진하던 공정경제 3법도 잠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청회 등 토론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계도 일단 한숨을 고르며 정치권 설득 준비에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공정경제 3법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 정치권 행태에 처참함을 느꼈다. 사회·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법안을 만들면서 이해관계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얘기 좀 들어달라”며 호소해야 “듣겠다”고 인심쓰듯 하는 건 도대체 어느 시대 정치인지 모르겠다. 공정경제 3법은 입법 과정부터 ‘공정’하지 않았다.
 
공정경제 3법이 대기업에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출발점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 보완할 점은 있을 것이다. 추가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법 시행 후 부작용은 없을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현미경 심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이 논의의 필수 참석자는 경제계다.
 
국가 경쟁력에서 기업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애플과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은 해당 국가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여러 기업들 역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에게 박수 쳐주고 활력을 불어 넣어줘도 모자랄 판에 국회가 나서 발목을 잡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 경기침체 때마다 투자를 늘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 창출에 힘쓴 이들이다. 포스트 코로나 대비를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 지원사격에도 발벗고 나섰다. 적어도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것에 대한 안전망은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공정경제 3법은 정치권의 합의만으로 통과할 법안이 아니다. 여야는 이번 경제계의 절박한 호소를 엄살쯤으로 받아들이고 흘려듣지 않길 바란다. 그들과 마주 앉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기업 상황은 기업이 제일 잘 안다. 경제계 입에서도 공정경제 3법이 ‘공정한 기업 생태계를 만들 첫 걸음’이라는 말이 나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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