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 "잘못했다. 용서 구하고 싶다"
조수진 "박영선 사퇴해야"

▲ ▲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맨 왼쪽)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티마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해자는 이날 기자회견 후반부에 참석해 기자들과 일문일답 시간을 가졌지만 2차 피해 등으로 사진취재는 피해자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진행됐다. 뉴시스
▲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맨 왼쪽)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티마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해자는 이날 기자회견 후반부에 참석해 기자들과 일문일답 시간을 가졌지만 2차 피해 등으로 사진취재는 피해자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진행됐다. 뉴시스
투데이코리아=정우성 기자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로서 겪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가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는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은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었다"며 "그분의 잘못뿐만이 아니다. 제게 행해지던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 사과해달라"고 밝혔다.

피해자 입장문 전문
일터로 돌아가려던 그 길에 멈춰 서서

안녕하세요, 저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피해자입니다.

그동안 지원단체와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밝혀온 제가 제 안에 참아왔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저와 가족들, 지원단체와 변호인단은 수없이 고민했고, 그 시간들이 겹겹이 모여 용기를 갖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있어 말하기는 의미있는 치유의 시작이라 합니다. 저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그리고 한 사건의 피해자로서 제 존엄의 회복을 위하여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저는 당당하고 싶습니다. 긴 시련의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습니다. 오늘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해온 결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는 것입니다.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한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준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라는 뜻이기 합니다.

제가 겪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는 것 그 기본적인 일을 이루는 과정은 굉장히 험난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저라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속에서 제 피해사실을 왜곡하여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저는 쉽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피해사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서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입니다. 고인이 살아서 사법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피해사실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이 상황을 악용하여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 상실과 고통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화살을 저에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북부지검의 수사결과와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제 피해 실체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비로소 60쪽에 달하는 인권위의 결정문을 받아보았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여 조사에 임했고, 일부 참고인들의 진술 등 정황에 비추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인권위 조사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증언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사실의 자리를 찾기까지 힘써주신 대책위와 298개 단체가 모인 공동행동, 저를 변호하는 변호인단,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고소하기로 한 결정이 너무도 끔찍한 오늘을 만든 건 아닐까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작도 제가 아닌 누군가의 ‘짧은 생각’ 때문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한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의 인정’ 절차를 잃었습니다.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식과 멀어지는 일들로 인해 너무도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잘못한 일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면 용서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그분과 남은 사람들의 위력 때문에 겁이 나서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저의 회복을 위하여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잘못뿐만이 아닙니다. 제게 행해지던,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과하십시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과연 제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오히려 직면한 현실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닙니다. 저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입니다.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잊혀져 가는 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저라는 존재와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전임 시장의 업적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시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즉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누군가 고통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모두가 약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여성과 약자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진영과 상관없이 사회적 흐름임을 인정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피해자가 조심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좋게 에둘러서 불편함을 호소해야 바뀌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말 못할 상처를 가진 외로운 피해자분들에게 전합니다. 잠들기 전, 자꾸 떠오르는 불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생각하다가 베개를 적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입니다. 애써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참다 보면, 돌이키기 어려운 순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저를 지지하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우리는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저벅저벅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 사진제공=뉴시스
▲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부산을 방문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 문제 언급을 피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들 질문에 "그것과 관련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도 "그 내용을 잘 모른다. 좀 보고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이날 "피해자 기자회견과 관련해서 제가 언급할 내용은 없다. 박영선 캠프에서 대응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양 의원은 "저는 사건 초기 ‘피해 호소인’이라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에 동의 했다. 저의 잘못"이라며 "한 정치인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했다.

양 의원 페이스북 전문.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께서 오늘 공개 석상에 나서셨습니다.
“저의 회복을 위해 용서하고 싶다”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라”는 말씀을 정말 무겁게 들었습니다.
고통이 시작된 그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통과 절망의 사간을 보내셨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건 초기 ‘피해 호소인’이라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에 동의 했습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한 정치인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의 작은 사과가 피해자께서 안고 계실 절망 중 먼지 하나 만큼의 무게라도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피해자께 죄송하고 저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유리천장을 깨뜨리고 권력형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저를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게다가 바로 잡아야 할 잘못에 함께 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우리 민주당의 잘못으로 생긴 선거입니다. 책임도, 해결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피해자에 이뤄지고 있는 2차 가해 역시 우리 당이 나서서 막아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서 2차 가해에 대한 당 차원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합니다. 우리 당 선출직 공직자부터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주십시오. 저 역시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피해자께서 겪은 피해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정한 사실입니다. 사실에 도전하는 행위는 당이 먼저 나서서 엄단해야 합니다.
오늘 피해자께서 그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으셨음에도 용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말로도 죄송합니다.
피해자께서 겪으셨을 모든 저희의 잘못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겠습니다.

▲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제공=뉴시스
▲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제공=뉴시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블로그에 '피해자의 정상적인 복귀를 최대한 돕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여기서 오 후보는 "민주당과 후보캠프에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피해고소인’이라고 불렀던 인사들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러니 박영선후보의 사과를 진정어린 걸로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수진 의원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1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조 의원은 "피해자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박영선 후보는 지금이라도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면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자며 ‘2차 가해’를 주도한 사람은 후보 대변인을 맡아서도 안 됐고, 지금이라도 사퇴해야 하며, 최소한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했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제공=뉴시스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제공=뉴시스

오세훈의 서울
피해자의 정상적인 복귀를
최대한 돕겠습니다.


착잡합니다.
피해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나.
그럼에도 피해자는 ‘용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겁이 나서 하는 용서가 아니라, 본인의 회복을 위해 용서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피해자는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피해사실 왜곡하고 상처주었던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되었을 때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어 이 자리에 서게 됐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저의 피해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투표율 23%의 당원투표로 서울시장에 결국 후보를 냈고, 지금 (박영선)캠프에는 저를 상처주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과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조치가 있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의 잘못 뿐 아니라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해달라.”
“본인을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사람들에 대해 민주당 차원에서 징계해달라.”
“저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던 그 의원들에 대해서 직접 저에게 사과하도록 박영선 후보님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셨으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사과는 진정성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
라고 말입니다.

박영선 후보는 피해자에 대해 사과했다고 항변하겠지요.
하지만, 민주당과 후보캠프에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피해고소인’이라고 불렀던 인사들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인 남인순과 진선미, 캠프 비서실장 이수진, 캠프 대변인인 고민정까지, 이런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박영선후보의 사과를 진정어린 걸로 보기는 힘들겁니다. 피해자도 그 진정성이 없다는 걸 지적한 겁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준 캠프 구성원들의 '자진사퇴'입니다.

한편으로 제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전직 비서실 동료가 말한 ‘서울시장 당선 후에 해달라’는 부탁도 꼼꼼히 챙길 것입니다. "그 친구가 기나긴 고통을 끝내고 자기자리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란다."던 친구분 말씀, 새겨들을 것입니다.

봄이 오고 있지만, 피해자는 아직 꽁꽁 언 동토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신 모습에 콧잔등이 시큰해집니다.
이 글의 마지막을 피해자께서 하신 말씀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닙니다.
저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입니다.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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